일본에서 주접떨기

일본여행 3일 차

by 나의해방일지

‘사람은 왜 생각이란 걸 해야 하는가’


생각을 하고 살라는 말은 쓸데없이 상념에 잠기라는 뜻이 아니다. 뜻을 세우라는 말이다. 뜻을 세우려면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을 가지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까 사실 생각을 하고 산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나는 지난밤 긴자 거리에서 오마카세를 먹으며 생각에 대한 나의 철학을 논한 바 있다. 사색과 글쓰기는 운명에 맞서기 위한 하나의 투쟁이라고 말이다. 맨 정신에 다시 봐도 역시 맞는 말을 했다. 헌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나로 살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반대로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고, 그다음에 싸울 것도 생긴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 없이 산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먹고살기가 바빠서 그런 게 있고, 다른 하나는 인생이란 것이 생각을 한들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대부분 골치 아프게 자기의 고민을 붙들고 있다가, 거기서 나름의 답을 얻을 때까지 끈기 있게 생각을 깊이 이어나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고민이 있어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졸리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는 욕망에 취약한 존재이기에 갖고 싶은 무언가, 되고 싶은 무언가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 순간 고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린다. 말하자면 눈앞의 감정과 욕망을 쫓다가,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방향을 잃고 만다는 거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진다.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 삶은 결국 ‘모방’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내가 선망하는 누군가를 따라 하려고 애쓰고, 남들이 좋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휩쓸려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런 삶. 그런 인생의 목표와 의미는 대부분 ‘소유’에 집중되어 있다. 무엇을 소유했나? 혹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나? 이런 걸로 인생을 비교/평가하는 식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처음엔 그 누구도 비교당하는 것과 평가질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들이 짜놓은 새장에 스스로 개목줄을 차고 들어가 앉아서 줄 세우기를 즐기게 된다. 내가 어느 누구보다는 더 낫다는 거. 고작 그 따위 이유에 한 없이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하찮고 우스운 일인데 허영심에 빠지기 시작하면 자기를 돌아보기 힘들다.


고리타분한 얘기 같지만, 소유를 통해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뭐든지 막상 갖고 나면 그것이 주는 설렘과 만족은 곧 익숙함과 권태로 돌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소유는 의무를 낳고 인생의 고통을 더할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 그것이 바로 인생의 종착점이라는 얘기다. 남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생각 없이 쫓아가는 동안, 혼자 자기 안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어떠한 ‘존재’로서 살아온 사람만이 마침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친구들이 다 먹고살 궁리를 하면서 학과를 고민할 때 신학대학교에 입학할 만큼, 어찌 보면 대책 없이 무대포로 살아왔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을 적에는 신학을 한 것을 잠깐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굶어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상 신학을 할 때는 목사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놈의 돈돈 거리는 게 꼴 보기 싫었다. 나는 관념론자도 싫고, 유물론자도 싫다. 내가 관념을 미워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 종종 실존의 행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고, 내가 유물론자를 싫어하는 이유 또한 인간의 존귀함을 한 낱 숫자로 환산하려 들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늘 내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삶의 순간마다, 내 나이와 경험에 어울리는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좌충우돌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기에 나는 그 모든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생각한다.


‘일본에 혼자 놀러 와서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즐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주접을 떨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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