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새로운 것이 좋다.

일본여행 4일 차

by 나의해방일지

나는 히라가나도 읽을 줄 모르지만, 짧은 영어와 애플 번역기 그리고 구글맵만으로 혼자 도쿄, 오사카, 교토를 여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세 곳 모두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라, 나 같은 까막눈 외국인을 위한 시스템이 그만큼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방문한 일본의 세 도시 모두 한국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인기 관광지인데, 도쿄는 워낙 큰 도시라 도시 그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오사카는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지는 게 압도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일본여행의 화룡정점, 피날레는 교토가 맡게 되었는데 교토는 듣던 데로 일본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가장 잘 뭍어나는 곳이었다.


도톤보리의 밤거리, 인산인해


몇 해 전에는 친구들과 후쿠오카현에서 3박 4일 여행을 했고, 이번에는 도쿄, 오사카, 교토를 5박 6일간 여행했으니 나도 이제는 일본을 두루 다녀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보니, 일본이 왜 전 세계인들이 몰리는 관광의 나라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 같다.


일단 이 나라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고, 교통이나 숙박 등 시설이 편리하고 깔끔하며,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남에게 적당히 무관심하다. 그러니까 관광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사회 안에서 머물기에 불편함이 없다.


어떤 사회심리학자가 일본은 개인/집단주의, 한국은 주체성/공동체성이 강하다고 평한 바 있는데 나는 적잖이 공감이 되었다. 공동체성이 강한 한국사회에 살다 보면 가족/학교/회사 등에서 강한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그것이 동기부여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항상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체면을 차려야 하므로 그만큼 피곤하기도 하다. 만약 가족이나 학교, 회사 등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소속되어 있는 바운더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만큼 강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 있는 동안에는 약간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홀가분한 기분이랄까.


꼭 일본이 아니라 어느 곳이라도, 낯선 공간에 가면 새로움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렘이 있다. 그 낯섦이 너무 지나치면 설렘이 아니라 당황스러움이나 불편함이 될 수도 있는 법인데, 적당히 비슷하면서도 또 적당히 새로움이 느껴지는 곳. 그게 일본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교토역 바로 앞에 위치한 니덱 교토타워


나는 오늘도 기어코 높은 곳을 찾아가 교토시내 전경을 바라보면서 직성이 풀렸다. 전망대 높이는 100미터 정도로 도쿄의 스카이트리와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의 타워였지만, 교토시 자체가 마천루 같은 고층빌딩이 없고 낮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충분히 멋진 전경이 펼쳐졌다. (도심 곳곳에 사찰 등, 문화유산이 많아 고도제한이 있다고 한다)



곳곳에 유명 사찰들이 눈에 들어온다. 교토시내 전경


저녁에는 숙소에서 대략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기온시조와 폰토초라는 곳을 헤드셋을 끼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기온시조는 한국으로 치면 청계천을 끼고 쭉 형성된 상권의 느낌이 들었고 폰토초는 서촌이나 북촌거리를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시온시조 거리 풍경(위)
폰토초 거리 풍경(아래)

폰토초의 좁은 거리는 과거에는 매춘을 하던 거리였다고 한다. 이제는 주로 소고기나 술을 파는 바(bar)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일본 사람보다는 외국인들만 드글거리는 거리가 되었다.


이제 긴 여행의 끝이 보인다. 내일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 한다. 마침 숙소에 세탁기가 있어 묵혀둔 빨래를 돌리며 오늘 여행의 소회를 푼다. 처음엔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나 혼자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였으나, 결국 계획한 대로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경험들까지 더해지며 즐겁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


역시 인생이란 해보기 전엔 두렵고 불안하지만, 막상 해보면 별것도 아니게 되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해야 하는 게 있으면 그냥 일단 하자. 하면, 된다. 그게 오늘의 교훈이다.


기온시조와 본초토 사이를 흐르는 가모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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