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논하는 나의 연애론

일본여행 마지막 날

by 나의해방일지
일본에서도 러닝을 하는 사내, 그것이 나다.


나는 꼭 일본에 오고 싶었다기 보단,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나에게 새로움이 필요했던 이유는 칠 년간의 결혼생활이 끝나버렸기 때문이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느라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까닭이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게 있다면, 이제는 이혼이라는 사건이 나를 더 이상 짓누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제주여행 이후로 이제 나는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어느 정도 건조하게 나의 이혼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만나서 결혼을 할 수도 있고, 또 살다 보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처음 만나는 그 순간 결혼을 할지 말지 알 수 없듯이, 누구나 결혼을 하면서 이혼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겪는 그런 일 중에 하나를 경험했을 뿐이고.


최근에 <결혼의 종말>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거기서 말하길, 남녀 간의 사랑이 결혼의 동기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결혼은 대체로, 재산과 권력을 쥔 남성이 아내의 성을 독점함으로써 자신의 생물학적 상속자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나는 요즘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낳을 거면 결혼을 하고, 그게 아니면 그냥 연애나 동거를 하면서 살라고. 육아를 할게 아니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일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낭만주의 결혼문화는 1960-70년대 미국 (주로 브로드웨이 영화를 통해) 수출되었다고 하는데,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것이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공염불 같은 이야기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랄까.


그러면 평생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부부는 없나? 아니다, 물론 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분들도 꽤 있고. 그런데 그 부부가 평생 낭만적이고 매일 설레는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란 거다. 나도 7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해봤지 않나. 연애의 감정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은 아무리 길어야 3년을 넘기기 어렵다.


평생 해로하는 부부는 의리와 연민, 책임감으로 산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힘든 세월을 함께 버티고 살아왔다는 강한 연대감. 서로를 깊게 알고 이해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긍휼히 여기며 보살펴 주고 싶은 애틋함. 함께 낳은 자식이 있기에 그 부모로서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것이 평생 둘 사이를 이어주는 강한 고리가 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미디어가 심어놓은 이 ‘낭만주의 결혼’이라는 허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영원한 사랑의 종착점으로 여기기 때문에, 선뜻 결혼을 결정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은 일찍부터 연애를 하고 늦게 결혼을 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까지 많은 연애경험이 쌓인다. 그러는 동안 눈에 콩깍지가 씌거나 정신이 헤까닥 해서 결혼까지 해버리는 케이스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후자의 경우에는


‘결혼이라는 걸 해서 내가 정말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일수록,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평생 한 명만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많은 연애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랑과 낭만을 찾고 싶으면 평생 연애를 하면 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려 평생 의지할 전우를 만들고 싶으면 결혼을 하면 된다. 그것이 내 결론이다. 연애의 짜릿함과 설렘보다, 자녀가 주는 행복 그리고 가족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싶다면 결혼을 선택하는 게 좋다. 그런데 나는 꼭 평생 낭만적인 사랑을 해야겠으면 그냥 결혼하지 말고 연애만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 (괜히 결혼했다가 본인 포함 여러 사람 인생을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한 때 영원한 사랑을 꿈꿨던 한 남자의 고백이다. 이것은 누구를 향해 외치는 충고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대는 다짐이다.


내가 일본에 여행 와서 굳이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 내려 가는 이유는, 그 결혼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에 혼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편으로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내가 찾던 것이 거기에 없었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다시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실패했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사랑이 떠나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이것으로 나의 두서없는 일본여행기를 마친다. 다소 거친 글을 읽고 좋아해 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이 글은 교토의 유명한 니시키 시장에서 말차라테와 말차&팥모찌를 먹으며 작성하였다.


교토의 명물, 니시키 시장 골목


니시키 시장 안에서 사먹은 말차라테와 모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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