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아주 사소하고 사소한...

心邊雜記▶

by 유이지유

[ 아주 사소한 습관의 차이]


아침마다 밥상머리에 여지없이 올라오는 메뉴가 있다.

지겹지도 않은지!

된장 고추장도 이렇게 오래 묵힐 수 없다.

우리고 우려냈는데도 앞으로 얼마를 더 우려낼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당신은 숟가락에 밥풀 묻히고 먹는 걸 평생을 못 고치냐, 복이 다 달아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놈의 잔소리! 또 해대?!”


평생을, 한 40년을 넘게 같이 산 부부의 아침 풍경, 분명 죽는 날까지 계속 올라올 잔소리 메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서로의 행동을 평생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

꼴 보기 싫어서 매일같이 잔소리를 퍼붓고 그것을 불쏘시개로 격렬히 타오르기 일쑤다.

서로의 꼴 보기 싫은 버릇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참고 사는 것인가,

꼴 보기 싫기 때문에 안 좋은 버릇만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잔소리에 싸움을 하면서도 다음 날이면 똑같이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고 싸움이 무마됐거나, 행동이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전날의 일이 리셋된 것 마냥, 아침상을 마주하고 있다.


“아~ 그놈의 밥풀, 복 달아난다고. 드럽다니까.”

“아~ 그놈의 잔소리!”


정말 리셋은 안 되는 걸까?

이들이 서로의 맘에 들지 않는 곳을 미리 알았다면 그래도 부부가 되었을까?



간접 피해자이기에 물어보았다.


“우리 때는 무조건 결혼하는 건 줄 알았으니까 했지. 내가 너네면 안 했다.”

한 명은 시대를 탓했다. 그때는 결혼을 필수불가결한 인생의 코스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혼자 산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서 가라고 하니까 얼굴도 모르고 시집 왔지. 이런 인간인 줄 알았으면...”

한 명은 순진무구했던 자신의 어린 날과 부모를 탓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 평생의 수수께끼, 불가해 포인트가 이거다.


나라면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결코 함께 하지 않을 동거인의 버릇.

‘그래, 시작이 어찌 저찌 그랬다 하더라도, 40년을 넘게 살았잖아! 조금씩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런 마음도 없고 매일같이 죽어라 싸울 거면, 진즉에 갈라설 수도 있었잖아. 참, 힘들게 산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시네...’

또 불꽃같이 일어나는 두 사람을 보며 목 구녕까지 올라온 할 말을 삼킬 뿐이었다.



‘꿈은 멀고, 생활은 가깝다’

이상은 이상일뿐이다.



매일 같은 밥상머리의 전쟁에 휘말려 눈을 뜨고 정반대의 꿈을 꿔 본다.





<눈 뜨고 꾸는 꿈>


평생 함께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밥상이다.

먹는 모습이 보기 좋은 동거인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마음을 담아 준비한 음식을 복스럽게 먹을 줄 알아서,

그 모습만으로 행복이 충만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그/그녀는 아주 복스러운 사람이다. 다람쥐처럼 음식물을 양 볼이 터지도록 넣고 최선을 다해 오물거린다.

턱이 좁아서 아주 많이 오물거리지 않으면 음식물을 잘게 부스기 어렵다. 때문에 씹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사람보다 먹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식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말발이 좋아서 평소에는 나보다 많이 얘기하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오물거리느라 듣는 쪽이 된다. 꼭꼭 씹어 먹으라는 어릴 때부터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서 정말 아주 오랫동안 오물거린다.


먹성 좋은 삼 남매 중 중간이라 전투적으로 먹어치우는 버릇이 든 나와는 많이 다르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삼켜버리는 버릇 때문에 위장 고생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만나 위장병이 거의 사라졌다. 같이 앉아 꼭꼭 씹다 보니 소화 장애가 개선된 것이다.


때로는 늦게 먹는다고 잔소리를 해댄 적도 있다.

약속 시각은 다가오는데 식사의 반도 못 끝내고 있는 모습이 나로서는 답답해 보였다.

싸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싸울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가 식사 준비 시간을 30분 앞당겨서 시간을 맞도록 조정을 했다.

좋은 습관을 나쁜 습관으로 변질시켜 버릴 뻔했다.

내 사고방식과 욕심으로 인해서.



동거인으로 인해 지금에야 꼭꼭 오물거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음식은 쓸어 담듯이 식사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미간이 찡그려진다. 보고 있는 내가 체할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 잔소리로 인해 위장장애로 고생하게 만들었던 일이 떠올라 새삼 미안해졌다.


볼 빵빵 오물오물 잘도 씹는 그/그녀가 좋다.

오늘도 오물거리며 내 얘기를 들어준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당신의 좋은 습관을 내가 닮아가고 나의 좋은 습관을 당신이 따라 하며 그렇게 우리는 함께이다.


그대의 오물거리는 습관이 꼴 보기 싫어지는 날이 올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대의 ‘욱’하는 성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건 습관의 문제가 아니니까 일단은 밀어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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