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것들, 가슴 떨리던 순간들.
원래부터 무뎌지려고 했던 게 아니다. 숨이라도 붙이고 살아보려 애썼다.
그런 게 사는 건 줄 알았고, 남들도 그렇게 산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 먼지로 날려간 것을 알지 못했다.
재방송으로 가득해진 삶이라, 흥미도 끌지 않던 장면들을 반복했다.
‘이토록 가슴 설레 본 적이 언제였던가?’
'동지섣달 꽃 같은 너'
만물이 피어나는 봄날보다도 훨씬 앞서 메마른 나의 일상에 향기로 물들여 주는 너.
두 눈을 반짝이고, 볼 발그레 상기되고, 웃음이 묻어나는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는 너.
생기와 온기로 가득한 너는,
식은 피자 같은 나의 일상을 망설임도 없이 내던지게 만들었다.
선명한 색을 덧칠하며 펄떡 살아 올랐다.
처음 보는 장면들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니 너무 새로워서 시간을 잊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돋아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너에게 다가갔다.
*
도서관을 나서는 도하의 머리 위에 구름처럼 만개한 벚꽃이 흩날렸다.
바람이 쏴아 하고 불어 작은 꽃잎들을 거의 머리 위로 수놓았다.
천천히 팔랑거리는 꽃잎이 도하의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세례를 내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위로하듯, 앞으로의 나날들이 축복으로 가득하길 빌어주듯.
아기 손톱 같은 연분홍 꽃잎이 팽그르르 도하의 손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더없을 생명들이 한순간에 덧없이 스러지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가슴이 저릿했다.
불멸이라 믿었던 사랑의 맹세도 필멸의 꽃잎들처럼 팽그르르 시간의 바퀴를 굴려 사라졌다.
올려다보는 꽃잎들에 찬란한 햇살에 부서지며 찰나의 순간을 각인했다.
나는 네가 알려준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