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무렵에 시 한 편을 썼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시였던 것 같다. 제목이 음...
<<마리오네트의 잠>>
꿈은 죽음이다. 검은 죽음 속으로 뛰어든다.
매일 밤, 죽음으로 풍덩!
아침은 삶이다. 언제 죽였냐는 듯 돌아온다.
매일 낮, 거짓으로 풍덩!
희로애락에 몸부림치며 웃고 우는 마리오네트
매일 다시 날아난 몸은 연기가 날로 훌륭하다.
꿈은 죽음인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살아난다.
낮은 삶이라서, 즐거운 척 동정하며 잘도 산다.
삶은 악이다. Live is evil.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상처 입고 거짓말 할 수밖에.
삶은 악이니까. 악한 것이 사는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죽어버릴 거니까, 매일 밤.
매일 죽는 밤, 매일 살아나는 낮.
눈 뜨면 다시 날아나 똑같은 생과 죽음을 반복한다.
근데...
좀 지겨워. 연기가 날로 훌륭해서...
이젠, 꿈속에서만 살고 싶기도 해.
눈부신 꿈만 계속 꾸고 있고 싶어.
*
이미 오래전에 기억 너머에 묻힌 시를 소환해내려니 내용이 엉키고 말았다.
솔직히 지었던 당시의 느낌에서 꽤 멀어진 듯하다.
하지만 이미 잊힌 시를 명확히 기억한들 그때의 것은 아니리라.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지 않듯이...
그러니 시어가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지었을 당시도 시라고 자각하며 쏟아냈던 말들도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런 내용의 시였다.
*
떠오르는 감정을 일필휘지로 휘갈기고 머리를 눕히는 방 귀퉁이에 붙여두었다.
잠 못 들던 긴 시간을 이 시를 읊조리는 것으로 때우곤 했다.
조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희끄무레한 달빛이 내려앉는 벽이었다. 달빛이 들지 않는 어둠일 때도 상관없었다. 이미 내 눈에 아로새겨져 눈을 감고도 읊조릴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만큼 어둠에 기대 있었다. 눈부신 낮을 사는 것에 질려 있었다.
고작 지금의 반도 살아내지 않았던 나였건만!
무엇으로 악을 연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택의 기로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부자리를 개어두면 보이지 않는 귀퉁이.
어느 날 벽과 이불 틈에 붙은 시를 발견한 엄마였다.
“니가 쓴 거야?”
“응.”
왜 이런 시를 썼냐는 멍청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좀 더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왜?”
“혹시 알아? 깜깜한 낮도 있을 수 있잖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사는 것에 지친 건지, 죽는 것에 지친 건지 당시로써도 확실하지 않았다.
“성급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어. 미리 끝낼 필요 없잖아.”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데 이 지겨운 짓을 반복하라고?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우선은 나 죽기 전까지만 참아볼래? 얼마 남지 않은 거 알잖아.”
“어차피 끝날 거였잖아. 근데 왜 버텼어? 버티니까 뭐가 달라졌어?”
나의 물음에 엄마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를 만났잖아.”
*
희미하게 미소 짓던 엄마는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했다.
27살의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주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너무 이른 죽음이라고 했다. 아까운 재능을 다 피워보지도 못하고...어린 것 하나 남겼다고...
엄마의 선택을 나무라며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엄마가 그 나이까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갖은 거짓을 지어내야 했는지!
그러나 엄마는 패배하고 말았다.
* * *
그래서 이번엔 내가,
엄마가 말한 ‘깜깜한 낮’을 살아보기로 했다.
밝은 빛을 등져야 하는 삶을 말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도,
악일 뿐인 삶을 살아 보리라.
그림자를 뒤집어쓴 삶이 눈부시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