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 선택의 무게

by 유이지유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게 언제 되는 건데? 준비가 되긴 될까? '사랑할 준비'라는 건 준비라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난 말이야. 닥치는 거라고 생각해. 이성적으로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런 만남이 생길지 알 수 없어. 날벼락처럼 닥쳐오는 산사태 같은 거지. 근데 그런 사태를 어떻게 착착 준비해 뒀다가 대처를 할 수 있겠어?

만일 그게 가능하다고 치자. 그게 진짜 사랑일까? 사랑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랑의 의미가 다르기 하겠지. 하지만 너의 삶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려는 거라면...음, 그건 '사랑'이라는 적당한 눈속임 아닐까?”


“준비도 안 되고, 준비했어도 소용없는 짓이라면... 그런 자연재해 같은 일에 왜 동참을 해야 하는 거야?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도 없잖아. 닥치면 닥치는 대로 수습하기에 바쁜 일을 만들 필요가 뭐 있어.”


“자연재해 같은 일이니까. 준비도 안 되고,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거지. 머리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지. 마음이 시키는 일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을 따를 때가 있고, 마음이 아파도 머리를 따라야 할 때가 있지.”


“표면과 이면의 전혀 다를 수 있어. 예를 들어 가족이란 존재!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서 행복을 느껴지겠지. ‘짐’으로 느낀다면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같이 무겁기만 하겠지. 너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180도 달라져. 이왕이면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게 어때?”


“너의 말에는 충분히 공감해. 나도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지금 이 문제는 달라. ‘되돌릴 수 없는 책임’이 걸려있단 말이야! 알잖아, 한결같은 마음이란 없단 걸…"


"마음이 변해서 그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은 여전히 사랑하더라도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같은?"


"그래... 나 혼자 견뎌야 하는 리스크라면 그게 어떤 일이든 상관없어. 전적으로 자업자득이니까. 그러나 내가 한 선택으로 인해 파생할 문제는?"


"아, 잠깐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 상대도 너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건 그 상대의 몫이라는 거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런데 만일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도 그런 사람들의 아이로 태어났으니 그 아이의 책임 있냐 묻고 싶은 거지?"


"그래, 난 모르겠어. 그래서 선택이 힘들고 겁이 나.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난, 내 선택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 하나였으면 좋겠어..."


"변하는 게 무서워. 선택했기에 책임의 무게를 감내하고, 견뎌내기 위해 변하는 것이...

삶이라는 녀석은 그리도 싶게, 마음을 짓눌러 버리잖아. 참 쉽게도 변형시키지.

둥글둥글하던 것이 여기 채이고 저기 차여 삐져나오고 딱딱해지고 모가 나서 서로를 상처 입히잖아.”


*

나의 마음이 나에게 묻기에, 나에게 대답했다.

'너를 사랑해. 네 곁에서 함께 하며 너를 사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변하는 것이 무서워. 변할 게 뻔한 시답잖은 내가 무섭고, 너를 변하게 만들지 모를 것들이 무서워.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야. 내 삶에 있던 선택의 무게는 늘 그랬어. 곁에 있던 이들의 삶도 언제나 그랬거든.'



그 애가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애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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