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소아 일기] 이방인 놀이

제2장 - 절망의 환희

by 유이지유

다이어리의 첫 장을 넘겼다.

*




[이방인 놀이]


광활한 우주, 그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다시 귀퉁이 또 귀퉁이 점박이 별 하나,

그 속의 귀퉁이, 지도에 표시도 없는 귀퉁이의 또 귀퉁이, 내가 사는 도시,

그 귀퉁이 동네에 작디작은 것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복닥복닥.

한 쪼가리를 위해 악을 악을 써대는 인생들 사이를 떠도는 그림자 인생.


*

작디작은 이 도시, 이 고장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복닥복닥 살아간다.

모두 죽을똥말똥 살똥죽을똥 아등바등댔다.

점 같은 동네,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보면 그 틈새틈새에서 꿈틀대는 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얼룩 자국 같아 보여도 제 나름의 삶이 꿈틀댔다. 선명한 태양 빛을 머금은 건물 속 사이사이에 삶이 숨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여 이 동네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색으로 물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빨래에 배인 수고로움이 집집마다 나부꼈다.

움푹 팬 도로 위로 웅덩이진 일상이 덜컹거렸다. 눈 뜨면 뛰쳐나가 눈 감는 시간에야 돌아오는 집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조잘대며 구르는 게 이곳의 삶이었다.


이제 막 새 단장을 마친 산책로는 삶의 복닥거림 따윈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반짝이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평일 오후의 산책로와 대조되는 주말 풍경,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부모자식과 반려견을 이끌고 나온 이들. 이런 한가로운 일상과 괴리감이 넘치도록 미여터지는 나의 동네. 친숙함과 낮섬이 복닥대는 동네에서 나는 언제든 이방인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내가 친밀함을 느끼는 것들에게서 밀려나 구경꾼으로 산다.


*

나는 내 집이 아닌 곳에 체류 중이다.

오래 머물 곳이 아니었다.

내 것이라 장담할 게 없는 셋방살이 인생이다.

생활 유지를 위한 밥벌이 관계를 할 뿐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기에 여행 가방 속 물건은 제 위치에 놓이지 못하고 너저분했다.

제 위치를 모르는 것은 언제나 그렇다.

적당한 위치를 잡지 못하는 것이 적당한 삶을 누리는 법은 없었다.

적당함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기준은 바뀌고 또 바뀌었다.

다른 이들은 어찌 저리도 빠릿빠릿한지!

휘둥그레 할 뿐이다.

의문에 빠져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또 유행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시대에 뒤처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기웃대기만 했다.

안도 밖도 선택하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

셋방살이 중인 도시에서 턱을 괴고 사람살이 구경에 빠져 있다.

혼돈의 거리를 거니는 나는 시대의 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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