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소나 일기] 가난의 민낯

제2장. 절망의 환희

by 유이지유

<가난의 민낯>

아름다운 날의 향수에 젖는다.

그런데 나의 생애에 그런 날이 있기는 했던가?

지나온 날을 되짚어 본다.



마른 날에도 웅덩이진 잿빛 거리를 내려다보던 시절, 거리 한구석에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의 일상을 토로하던 이들의 푸념. 옥탑의 열린 창문으로 눅눅한 사람내와 거리의 소음이 여과 없이 밀려들었다. 평소라면 머리 쥐어싸고 눈살을 찌푸렸을 테지만, 그날은 6월의 햇살에 희석되어 진공처럼 나를 감쌌다. 이제 곧 들이닥칠 무더운 여름의 공포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산뜻하기만 한 초하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겹겹이 이어붙인 슬레이트 지붕에 가려져 그 아래 적나라한 가난의 민낯도 희석되었다.


그 무렵의 가난은 아프지 않았다. 불편하긴 해도 스스로 비천하게 여기지 않았다. 가난은 가난을 비난하지 않는다. 흠이 되지 않았다. 민낯을 드러낸 서로의 가난은 절망적이지 않다. 가난은 연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가난에 절망하여 절명을 생각한다.


내가 마주한 가난은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똑 닮아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의 셋방 건물에 맞닿은 고시원 방의 주인은 내가 마주한 가난이었다. 그 젊은이보다는 나은 돈벌이라 여기며 안도했던 나의 가난. 오히려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가난이라 아름다운 날로 향수에 젖게 했다.

새벽녘에 잠시 켜졌다 꺼지는 불, 밝음이 부재한 그의 방, 어둠 속에서만 잠시 켜졌다가 몇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빠르게 일터로 향하는 젊은이의 방. 나보다 나은 그의 유일한 풍요는 그의 나이뿐이었다. 그래서 다락의 셋방살이 시절은 나를 향수에 젖게 했다. 길지 않을 안도였다. 그 젊은이처럼 그 전도, 그 전에도 다른 젊음이 그 방을 거쳐 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듯 그의 방을 곧 다른 젊음이 채웠다.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무성영화처럼! 향수로 기억된 시절을 품은 낡은 포스터처럼, 모두가 슬프고 모두가 아름다웠던 날들.

그 시절의 우리는 모두는 서로를를 반길 것만 같았다.

네가 나이고 네가 너인 듯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꿈꾸게 했다.


가난을 초하의 향기로 희석했다. 그런 시절의 꿈을 담아 타격감 좋지 않은 노트북에 타각타각 써 내렸다. 꿈꾸는 시절이 좋아 꿈에 취해 그 시간을 따라 걸었다. 반쯤은 잠에 취해 반쯤은 꿈에 취해, 침묵이 내려앉을 때까지 타각거렸다. 그 시절에 절대적인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내려앉은 어둠 희미함 속에서 나는 오롯이 내가 만들 세상에 온전히 취해 꿈을 노닐었다. 오지 않을 시절과 이루지 못할 꿈이 애틋하여 중독되었다. 영혼을 재료로 뽑아 꾸는 꿈은 너무도 달콤했다. 꿈을 꾸는 나는 꿈의 폐허 한구석에 앉아 나의 세상을 노닐었다. 꿈꾸는 세상에 한 발을 담그고, 다른 한쪽은 현실의 지옥에 발을 담근 나. 그 옥탑방에 천국의 향기를 품은 초하의 바람이 불었다.


이것은 가져본 적이 없어 품는 환상이거나, 미화한 과거가 풍기는 거짓된 향수일 뿐이다.

혹여 진짜 그런 날이 있었다 하더라도 잠시 잠깐 스쳤을 뿐이다.

만끽해 본 적이 없던 영광.

한 번도 오지 않았고, 경험한 적이 없는 날을 아련함으로 추억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꿈엔들 그립고 아련한 시간으로 되돌아 바라보고 있을까?



*

우리는 고질적인 정신적 치매 환자들이다.

제일 중요한 것을 가장 나중에 나중으로 미루고 매번 죽이고 만다.

지난한 삶을 반복하며 제자리걸음을 즐긴다.

깨달을 무렵에는

“우물쭐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런 문구조차도 묘비에 못 남기고 떠나겠지.

지금을 추억하는 나는 지금도 쓰지 못한 소설을 아직도 쓰지 못하고 매달리고 있을까?

거기에 인생이 달린 듯 목숨을 메지만 실은 그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어서 매달렸다.


그리고는 온갖 핑계를 대고 쓰지 않는 시간을 죽이고 있다.

몽상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근이 버티는 기술만 늘어 이젠 웬만해서 기죽지도 않는다.

싸울 힘도 없고, 싸움을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라 허세와 거들먹거림으로 생을 잇는다.


오늘도 나는 낙오자와 패배자들이 모인 거리에서 오지 않을 내일을 몽상한다.

비루함을 환상으로 포장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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