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소나 일기] 한 푼어치 인생

제2장, 절망의 환희

by 유이지유

<한 푼어치 인생>


할 일 없는 주말! 셋 방에 들어앉아 있어도 할 일이 없었다.

뒤척일 때마다 부유하는 먼지들 사이로 낡고 헐어빠진 삶의 모양새만 들어왔다.

주중이건 주말이건 바뀌지 않는 외투를 꿰고 밖으로 나섰다.

어제의 열기와 온기가 아직 빠지지 않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쓰레기를 걷어차며 걷다가 틈새에서 반짝이는 동전 하나! 누가 볼까 싶어 서둘러 잡아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코너를 돌고서야 동전의 물기를 닦고 주머니를 털어냈다.


오늘 수확의 전부일 것이다. 고작 동전 하나밖에 벌지 못했다.

한 푼어치 인생살이다. 벌이보다 소비가 앞서서 늘 마이너스이다. 특별히 뭔가를 가지고 싶어서 지르지 않았어도, 매달 정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안 하든 다달이 거르는 법 없이 알아서 뺏겼다.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고작 동전 한 푼에 두근대는 인생에게는 혹독한 사람살이다.


나라는 인간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용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들어가게 된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여길까?

이런 나와 달리, 사람 노릇을 할 정도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때의 나는, 목적지에 버스를 타고 갈까, 그냥 걸어갈까 고민할 일도 없고, 차비를 절약하려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지도 않겠지. 굳이 초대받은 것도 아니니 내가 간들 안 간들 상관하는 이도 없으니 말이다. 내 이름이 박힌 책들을 서가나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검색하면 기사나 근황이 나오는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말이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고 환영을 받으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쩔은 냄새와 눈을 아프게 하는 조명 아래서 시간을 죽일 일도 없다. 전망 탁 트인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추천 메뉴를 즐기며 글을 쓰고 있다면 말이다.



내가 앉은 곳은 어두운 구석 자리가 아니라 밝은 빛이 쏟아지는 통창 아래다.

척 보기에도 유명 브랜드의 고급진 모습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늘 따른다.

마침 나를 알아본 옆 테이블의 사람들. 브런치를 즐기다가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저 사람이 진짜 파소나란 말이지?”

“그렇대도! 월요 토크쇼에 나온 거 내가 봤어!”

“어쩜 좋아, 저런 유명인을 이런 데서 보다니…. 싸인 받을 수 있을까?”

“글쎄, 낯가림 심한 거로 유명해서….”

“딱 봐도 섬세하게 생겼네. 암튼 그래도 난 도전해 볼래.”

“하이고, 주책이라니까…. 그럼, 나도 받을래!”

나는 사람들이 수군거림에 귀를 쫑긋하면서도 아닌 척 창밖 풍경을 향해 있다. 느긋한 시선으로 사인과 함께 넣을 문구를 생각하고 있다. 안정과 여유로움이 있고, 사람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만끽하는 인생! 크크크~

아, 이런! 너무 키득댔네. 자기 인생을 상상하다가 미친 것처럼 혼자 웃고 말았다. 혹시 본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싶어 벌쭘해서 주위를 휘휘거렸다. 다행이다. 아무도 나를 보는 이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창밖은 벌써 어둑해서 조금 있으면 취객들로 소란스러워질 시간이었다.

할 일 없는 주말의 늦은 오후였으나, 여유로웠다.

아침에 발견한 동전을 커피값에 보탰다. 시원찮은 벌이에는 큰 도움이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서는 밤공기가 서늘했다. 동행이 없는 나라서 아무도 내가 카페에서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다. 타각거리는 도로에 내 발소리만 울렸다. 내 곁을 따르는 많은 이들은 발소리 없이 걷는다. 수많은 이들과 함께하며, 수많은 날을 꿈 꾸지만 어차피 꿈이다.



‘성공하여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나’는 망상이다. 이루어진다고 해도 오늘의 내가 만끽할 날이 아니다. 그 미래의 나는 어떤 나일지 알 수 없다. 그 현실은 꿈이 아닌 현실일 테니 그때 치러야 할 값이 싸지는 않겠지. 꿈만으로 즐기는 지금도 최악은 아닐 것이다.

서글픈 현실에 꾸는 꿈이지만, 즐겼으니 되었다.


잠시의 몽상으로 끝나고 마는 풍경이지만 내 안에는 분명히 현존하는 세상 말이다.

그곳의 이미지와 풍경,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성공과 몽상이라는 꿈속을 떠돌지만, 어차피 떠다닐 거라면 찬란히 반짝거리며 부유하자. 올지 알 수 없는 미래에 쫓기느라 이런 한 푼어치 인생이라도 팔아치우지는 말자. 그 아름다움을 각인하는 현실을 살자. 그런 꿈을 꾸자.

풍광 좋은 곳에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미래의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몽상은 나를 충분히 가치 있다 한다.

그곳에서는 나를 동전 한 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현실은 한 푼어치더라도 시시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무용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다.

품은 세상 속에서 나는 충분히 생을 노닐 수 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벌어지는 멀미는 어쩔 수 없다.

내 꿈을 많이 사랑하여 지불하는 값이 큰 것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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