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9
[데스크톱 정리]
마침내, 오랜 짐을 내려놓았다.
1년이 넘도록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데스크톱을 정리했다.
본체가 고장나서 고치기를 여러번이었다. 버버벅 문제를 알리는 소리를 내며 멈출 때마다, 버려야겠지 하면서도 '혹시 포토샵을 쓸 일이 생기면?'
데스크톱은 작업용으로 완벽하게 세팅해 둔 상태였다.
언제가 다시 정교한 그림 작업을 위해 포토샵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니까!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바로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분리해서 청소를 하면 다시 멀쩡하게 돌아가곤 했다.
새 데스크톱을 구매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불법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잠깐 사용은 가능하더라도 곧 정품 인증을 해야 해서 피곤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만 차지하고 버텼다.
그런데 작년 겨울 무렵, 즉 근 1년 전 모니터가 켜지지 않았다. 최근의 모니터와는 연결 방식이 다른 구형 모니터라 구형 젠더가 필요했다. 구하려면 못 구할 것도 없지만, '굳이?' 돈벌이를 위한 포토샵 작업을 하지도 않는데,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십여년 전에 샀던 그 데스크톱이라 이제 시대에 완전히 외면당한 상태였다. 윈도우 업데이트 서비스가 끝난 지 한참 된 구버젼이라 보안이 취약했다. 그토록 신경 쓰이는 바이러스나 랜섬웨어 공격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안전하게 기능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단순히 기계 고장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고철 덩어리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나는 미련하게도 그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버텼다. 다시 멀쩡하게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 혹은 과거의 편리했던 기억이 담긴 물건과 결별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200만 원이나 들여 산 최신형 노트북과 태블릿이 몇 개인데, 취미 수준의 그림그리기에 데스크톱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으면서도 말이다.
데스크톱의 부품들을 분리하며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버릴 때가 한참 지난 것은 데스크톱 컴퓨터뿐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생활에서 그런 것이 어디 한둘인가. 돌아보니 이 데스크톱처럼 이미 수명이 다했음에도 붙잡고 있는 것들 투성이었다.
더는 현재에 도움되지 않는 습관이나, 사고방식, 그리고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그러했다. 이미 단절했어야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것마저 없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옛날 방식이 편한데…’라는 안일함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데스크톱의 케이블처럼 발목잡혀 있던 것이다.
변화는 당연히 두렵다. 불편하다. 익숙해진 현재에 머물러 있고 싶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삶은 어딘가 반드시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나만 멈춰 있는다고 세상이 같이 멈춰주지 않으니 말이다. 시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전 시대의 유물을 고집하는 순간 삶은 정체된다. 미련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결국 더 삐끗나 불안정해진다. 결국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부조화를 일으킨다.
격렬하게 거부하는 것이 삶의 방식인 이들도 있지만, 나는 세상과 함께이고 싶다. 내가 숨 쉬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이런 세상을 함께하는 이들과 함께이고 싶다. 이런 선택을 했다.
불안은 사실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정체된 현실을 깨뜨리고 변화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구형 데스크톱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이, '낡은 것은 버리고 새것을 받아들이자'라는 결단으로 이어졌다. 그 간극에서 오는 날카로운 감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 자신이 과거의 낡은 유물이 되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인 것이다.
데스크톱을 비우고 나니 방 한쪽이 시원해졌다.
몸체가 한참이나 슬림하고 성능을 비교할 수 없는 노트북을 놓았다.
유물과 세대교체를 했으니 이제 그 자리는 새로운 기회나, 더 나아가 발전적인 생각들로 채워질 것이다.
비로소 미련을 버리고 불안정을 껴안은 그곳에서,
변화를 향한 걸음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