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일찍 잠들지 못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드라마를 끝내고 자려던 결심은 언제나처럼 무너졌다.
습관적으로 또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돌려댔다.
볼 것도 없는 여느 날과 달리 만난 프로그램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K-가곡 슈퍼스타'라는 방송이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실력을 갖춘 참가자들이 경쟁에 기꺼이 뛰어들었으며, 코멘트에 자랑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출연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경쟁에 참가해서 얻을 이득이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가능했을 것하다. 국뽕만은 아닐 것이다.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다.
착각과 국뽕의 콜라보레이션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잠시의 위안거리라도 어디인가.)
개판 5분 전인 정치 뉴스에 보고 있자면, 비관의 고속도로를 내달리게 된다. 그에 비해 해외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자국 문화를 보고 있자니, 비관 일방으로 기울던 마음을 잠시나마 추스를 수 있었다. 절망에 질주하던 마음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연휴를 핑계 삼아 또 빈둥댔으니, 일찍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차피 '망필!'
’에라 모르겠다. 잠이라도 퍼질러 자야겠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그런데 새벽 4시도 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빗소리가 거슬렸나, 어제 쓰려고 했으나 못 끝낸 에세이 때문일까?
깬 김에 습관대로 일어나 앉기는 했다.
일찍 깼다고 생산적인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벽 시간은 곧 ‘딴짓을 위한 밑밥 준비’ 시간으로 둔갑했다.
기상인증만 하고 얼른 써 보자 했으나, '볼 만한 거 없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다운로드하고 있네.
쓰려던 에세이를 위한 시간은 한없이 뒤로 미뤄졌다. 어제 못 쓴 에세이는커녕...이었다.
***
나에게는 스스로 부여한 숙제가 있다. ‘매일 1편의 글쓰기’.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상관없다. 분량도 중요하지 않다. 맺음만 낸 글이면 오케이다.
작심한 지 오래된 과제이지만, 단 한 번도 그 목표를 꾸준히 지켜낸 적이 없다. 언제나 작심삼일이었다.
이는 마치 달리기와 같아서, 매번 출발선 근처에서 좌절했다. 완주는 몇 번이었던가? 손꼽기도 힘드네.
실패의 핑계는 다양했으나, 주된 패턴은 거의 동일했다.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일단 켜고 보는 습관성 도피처인 동영상 시청.
시각을 뺏기는 순간, 글쓰기 약속 시간은 핑계와 함께 훌쩍 사라져 버렸다. 매번 이 자기 파괴적인 패턴을 알면서도 또다시 반복했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용솟음치는 비애감을 살짝 밀치고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며칠 전 쌓아두었던 짐들을 정리한 덕분인가 보다.
빈자리가 생기니 관점이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나 보다. 그런 생각 끝에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한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다. 헤드폰을 꼈다. 헤드폰은 외부의 소음을 막는 용도가 아니었다. 영상의 유혹적인 시각을 차단하고, 청각만 허용된 노래를 들으며 집중해 보기로 했다. 오직 청각만으로 주변 환경과 단절했다. 귀를 통한 도피는 허용하되, 눈을 통한 습관성 딴짓은 금지하는 것. 완벽한 도피는 불가능한 도구를 활용해 써 보겠다는 시도였다.
이런 시도는 분명 실패할 것이다. 며칠 뒤에 이 결심이 다시 무너질지라도.
계속 실패하자. 두려워하지 말고! 어차피 사흘 뒤에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패한 작심삼일은 목표의 끝이 아니라, 목표로 향하는 '리셋 버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만의 불완전한 타협법으로 계속해서 자리에 앉는 것이다.
실패한 점점들을 이으면 선이 된다.
재시작의 익숙함을 얻는 것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
그러니 다시 시작할 작심삼일을 향해 오늘의 실패 받아들이자. 멈추지만 말자.
나처럼 작심삼일의 비애에 몸부림치는 이에게,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