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9
어제 [노인과 고구마]라는 에세이를 쓰고 나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글로 풀어놓으니 민 옹에 대한 욱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돌아오니 눈앞에 놓인 고구마가 다시 무겁게 다가왔다. 계속된 폭우로 질척해진 밭, 상품성 보장할 수 없는 고구마, 며칠 앞으로 닥친 서리. 그대로 두자니 먹을 것조차 서리 냉해로 모두 잃을 판이었다. 그 많은 고구마를 그냥 포기해야 하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밭이 질척여서 캐도 꺼내 올 수 없어서 소용없다고 했다.
‘상품으로 팔 수는 없어도, 식구가 먹을 거는 건질 수 없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농작물을 망치는 상황이 좋을 리 없고, 나보다 더 속이 탈 민 옹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출근 전까지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캐고, 서리를 피할 수 있도록 팔레트 발판을 깔고 덮개를 씌우면 어떨까?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민 옹과 둘이서 이틀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돼. 될 리가 없어.”
고정 멘트다. 문제는 늘 그렇듯, 민 옹의 반응이었다.
무언가를 제안할 때마다, 시도조차 해보기 전에 자동반사적으로 부정부터 하는 민 옹. 늘 이 패턴이라, 나도 감정이 앞서 말다툼으로 번지곤 했다. 이번도 다를 게 있나, 첫 멘트에 역시나 욱했지만, 감정을 추슬렀다.
1차 전에서는 ‘안 하기’했다.
2차 전은 또 말다툼으로 고래고래, 홍 여사까지 참전한 3파전이었다.
고성이 오간 후에, 민 옹이 ‘해볼까?’의 반 긍정 모드로 전환,
3차 전쯤에는 들을 마음이 생겼는지, 나의 가능성을 설파와 브리핑을 수용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고구마 캐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에 출발했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해서 보이지도 않지만, 종종병 환자인 민 옹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밭에 도착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낫을 들고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줄기를 뜯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예상외의 고강도 노동에 죽을 맛이군.
줄기를 뜯는 일이 고구마 수확의 핵심이었다. 감자 캐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됐다. 줄기만 걷어내면 캐는 건 일도 아니었다.
캐 올린 고구마는 놀랍게도, 최상등급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잘 자라 있었다.
"내 평생 고구마 농사 중에 제일 잘 된 것 같다."라며 입이 찢어지는 민 옹이었다.
진창 속에 묻혀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을 것 같았고, 상황과 시기를 잘못 만나 캐지도 못해 버리려고 했던 고구마가, 가장 잘 된 고구마였다.
이 무슨 반전극이란 말인가!
진창 속에서도 고구마는 자란다. 비에 젖고, 진흙에 묻혀, 상품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 하지만 그 안에도 여전히 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실패처럼 보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비에 젖고, 때로는 “안 돼”라는 말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손을 뻗는 용기였다. 진창 속에서 단단히 영근 고구마가 그랬다.
민 옹과의 관계도 그렇다.
부정에서 시작해, 설득과 인내를 거쳐, 결국 함께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조금씩 움직인다. 내 감정에만 휘둘리지 않고,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 그렇게 관계를 붙잡으며, 삶을 일으켜 세워 간다.
고구마 줄기 끊어내느라 휘둘러댄 낫질에 오른팔이 나갔다.
푹푹 빠지는 도랑에 다리 힘이 빠졌다.
허리어깨는 쑤셨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진창 속에서 피어나는 마음 때문인가 보다.
고구마를 캐는 손길 속에서, 나도 조금은 영글어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