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삶쓰기 2025.10.18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은 여전히 축축하다.
가을은 실종되었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불안과 재촉, 그리고 축축한 땅에 발목이 잡힌 무력감이다.
여름 장마를 능가하는 빗줄기는 가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다음 주부터 서리가 내린다는 예보는 이제 삶이 더 이상 느긋한 순서나 예측 가능한 리듬을 허락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민 옹의 고구마는 결국 흙 속에 묻힌 채 캐지 못했다.
단순한 농사의 실패가 아니다. 계절을 읽고 땅을 일구며 흘린 땀과 지난한 노력이 무너졌다.
자연 앞에서 평생의 경험은 무력했다. 그 경험이 쌓은 오만함은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
같이 깨러 가겠다는 내 말에도,
‘늘 그랬으니까’, ‘나 혼자 할 수 있다’며 고집이었다.
자기만의 계산과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나 결국 굳건한 자기 세계를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올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게 물고기를 모두 빼앗기고, 결국 뼈만 남은 채 항구에 도착한다. 그는 텅 빈손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는 실패했다.
민옹도 마찬가지다.
고구마를 캐지 못했다. 땡볕 아래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기다린 시간은 헛되고 말았다.
그는 평생의 방식대로 땀 흘리고 고집을 부렸으나, 농사를 실패했다.
고집이 뒤섞여 빚어낸 비극이다. 굳건한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쓸쓸하고 안타까운 고립이자 노력 무용론의 증거이다.
이 실패의 기록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변화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고집과 경험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대다. 민 옹도 이제는 땅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곁에서 지켜보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실패는 비극이자, 비웃음의 대상인 것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내가 뭐라고 평가하고, 충고할 수 있단 말인가.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실패할 테니, 평생 그래온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바꾸라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축축한 땅 위에서 나는 생각한다.
삶은 늘 실패와 마주한다.
민 옹의 실패의 기록은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그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지금의 나로 자라왔다.
민 옹의 삶은 고구마보다 더 깊은 뿌리를 남겼다.
나는 그 뿌리를 따라 살아가고 싶다.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단단하게.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삶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그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갈 시간이라고.
고집 대신 대화로, 경험 대신 공유와 동행으로.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조금씩 바꿔 나아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