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의 탄생부터 성장에 얽힌 모든 이야기가 자기들 이야기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떠돌았다.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일수록 공공연히 그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기 얘기로는 공유 거리가 없는 이들일수록 더했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 자부했다. 이야기 속에 틈틈이 숨겨진 빈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흥미를 끌지 않는 소재가 그리 중요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소위 말하는 가쉽!
가쉽이란 그런 것이다.
가쉽이 가쉽을 키운다.
잠시 돌다 잊히는 이야기는 가쉽이 되지 못한다. 그런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다.
12월 24일 밤을 그를 둘러싼 사건은 단연코 모호한 상태였다.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그 사건에 언급한 이는 없었다.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본인 이야기를 그 누가 진실이라고 떠들고 다닐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처럼 입에 오르내릴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일단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을 뿐이었다.
한때 소문만 무성했던 그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조차 알지 못했다.
실제 한 사건으로 드러난 것은 공소를 제기한 피해자의 부모들이 매스컴을 타면서였다. 그럼에도 그 사건을 그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토록 처참한 사건에 그와의 연관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기에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건에서 빼버린 것이다.
공론화의 시작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지역의 조그만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기사 때문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 조그만 기사에서 출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당시의 피해자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했다.
그가 처음 증언한 것은 사건이 있고 며칠 되지 않은 병원에서였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목도한 그는 몇몇에는 혼돈이 있었지만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신빙성이 인정되어 조사관들은 그의 증언을 충실하게 담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재판이 열리기 직전 그는 자신의 증언 채택에 거부 의사를 표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증언 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또다시 자신의 증언 채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증언을 다시 증언으로 채택하라 주장하며 그의 증언은 거의 완벽한 진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증거로써의 효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가 왜 그렇게 증언을 번복하고 또 번복했지 지금에 와서는 분명하게 알아낼 수는 없지만 이야기에 혼란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후로 그의 증언은 두 번 다시 채택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희생자와 피해가 실제로 존재했던 이 극적인 사건이 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가?
이제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이 기이하고 비극적인 사건의 비극을 알리고 싶지 않은 힘에 의해 덮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구조의 문제였다.
진실의 너머를 보고 싶지 않은 자들의 욕망이 진실을 덮었다.
눈 돌리고 다는 이야기를 썼다.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욕망이 그의 이야기를, 이 사건을 안으로 안으로 곪 아들 게 했다.
자신의 프라이드로 일체화된 그의 이야기를 더럽힐 수 없었다.
결국에 곪아 터져 분출할 것을 가장 연약한 하부에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