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맹 : 자전적 이야기]

by 유이지유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너무나 얇은 책이다. 펼치자마자 한 달음에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필집이다. 그러나 그 속에 녹아 있는 작가의 심정과 사유의 깊이는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으며 느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체는 참으로 담담했다. 그러나 그 담담한 문체의 깊이에서 간음해낼 수 없는 세계에 다가가기에 힘에 부쳤었다.

이 에세이를 읽어보니 작가가 당면하며 견뎌냈을 시간, 상실을 견뎌내며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던 세계에 조금은 더 다가간 듯하다.



본문 중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그것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보내고 누구에게 보여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나의 경력은 여기에서 멈추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쓴 십여 편의 원고들은 선반 위에서 천천히 빛바래간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 짧은 글들이 어느 날 책이 될 것이라고는 아직 조금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2년 후, 내 책상 위에는 마치 진짜 소설처럼 처음과 끝이 있고, 일관성을 지닌 이야기가 담긴 커다란 노트가 놓인다.


이것을 타지기로 치고, 교정하고, 다시 타자기로 치고 너무 과한 것을 삭제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다시 고치고 또 고쳐야 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이 원고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누구에게 이것을 보내야 하고, 누구에게 이것을 줘야 하지? 나는 편집자를 한 명도 알지 못하고, 편집자를 알 만한 사람도 모른다. 나는 막연히 라주돔 출판사를 생각하지만 한 친구가 나에게 ...주소를 알려준다.


나는 원고를 세 부 만들도록, 소포 세 개를 준비하고 ‘출판 담당자님께...’로 시작하는 동일한 세 통의 편지를 쓴다.


“누가 그걸 출판해줄 거 같아?”

나는 말한다.

“당연하지.”
실제로, 나는 그 사실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고, 그것이 아무 문제 없이 출판될 거라는 확신과 신념에 차 있다. 그런 이유로, 세 곳에서 친절하지만 사무적인 거절의 편지와 함께 원고를 돌려받았을 때, 나는 실망하는 마음보다 놀라는 마음이 더 컸다.


...11월 오후, 내가 한 통의 전화 받은 것은 다른 출판사 주소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즈음이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사람은 쇠유 출판사의 질 카르팡티에다.

그는 내 원고를 지금 읽었고, 몇 년 동안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내 소설을 한 번 읽은 이후 다시 한 번 전체를 읽었고, 이것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동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 그는 나에게 몇 주 후에 전화하겠다고 말한다. 일주일 후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서를 준비할게요라고 말한다.


3년 후, 나는 나의 번역가와 베를린의 거리를 걷는다. 우리는 서점들 앞에서 멈춰 선다. 서점들의 진열창 안쪽으로 나의 두 번째 소설이 보인다. 우리 집의 선반 위에는 열여덟개 국어로 번역된 <비밀 노트>가 있다.


베를린에서 어느 저녁, 우리는 낭독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러, 내 이야기를 들으러, 나에게 질문하러 올 것이다. 나의 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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