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방영작, 지브리 스튜디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리뷰
어차피 같은 작품인데 넷플릭스라고 뭐가 특별한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분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개봉한지도 오래됐고,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것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에만 맛볼 수 있는 하울의 매력이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계속 읽어주길 바란다.
이 글은 작품 스토리나 연출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오로지 하울이라는 인물 하나만 바라보고 적는 글이다.
인터넷 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종이남친'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오늘은 추억 속 종이남친들 중에서도 하울에 집중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무작정 하울의 미모를 찬양하는 글이 되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넷플릭스의 어떤 기능을 이용해 하울의 색다른 매력을 여러 방면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넷플릭스의 기능을 이리저리 잘 살펴본 사람이라면 프로필에서 언어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마 영어공부를 위해 일부러 영어로 설정해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설정했을 때, 그 언어에 맞는 자막이나 운이 좋다면 더빙까지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원하는 언어를 선택하면 넷플릭스 내부 언어가 전부 그 언어로 바뀐다.
그래서 이게 하울과 무슨 상관이냐?
놀랍게도 넷플릭스는 저기서 선택하는 거의 모든 언어의 더빙 오디오를 제공한다.
이 사실을 알고 심심풀이로 아무 언어나 선택해서 들어가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다른 언어를 하고 있는 하울이 성우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보통 넷플릭스는 위치 기반으로 콘텐츠를 서비스하기 때문에, 살고 있는 나라의 공식 언어, 작품의 오리지널 언어를 음성으로 제공하고, 언어 설정을 바꾼다면 그 특정 언어를 제공한다. 영어는 가끔 기본으로 끼어있을 때도 있다. 자막은 그 언어에 맞게 제공해준다.
익숙한 한국어부터 시작해서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까지 들어본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성우가 연기하는 하울이 전부 미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같지만, 어쩐지 조금씩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가 주는 어감과 성우만의 해석, 그리고 목소리의 특징까지 해서 언어만의 하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내가 표기를 알아보지 못해 어떤 언어인지 모르는 것만 제외하고 모든 언어의 하울을 들어보기로 했다.
진정으로 하울에 진심인 사람만 쓸 수 있는 더빙 리뷰인 것이다.
이제 하나하나 다른 언어를 하는 하울을 들어볼 시간이다.
하울의 첫 등장 장면(소피가 빵집에 가는 사이 군인들에게 붙잡혔다가 하울이 구해주는 장면)을 다국어로 하나하나 들으며 특징 잡아 키워드를 뽑았다. 물론 진짜로 듣고 싶다면 넷플릭스로 달려가 직접 바꿔봐야 한다. 좀 번거로울지 모르지만 하울의 다양한 매력을 알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담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크리스 파인이 성우로 연기했다고 들었는데, 듣고 보니 그 목소린가 싶다.
하울의 대중적인 이미지에 비해 나른하고 깊은 목소리라는 인상을 가장 먼저 받았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정체모를 미남보다는, 오랫동안 날 지켜온 믿음직한 경호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속삭일 때의 목소리가 너무 섹시해서 저런 목소리로 하는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쓰 맨을 외칠 것 같다. 미국인 하울은 들으면 들을수록 야생동물이 떠올랐다. 코요테나 늑대라고 하면 잘 맞을 것 같다. 말투에서 농염하고 요염한 내공이 느껴진다.
미국인 하울을 한마디로? 30대 중반에 주변국들을 5개쯤 정복해 통합한 나라의 대장수
원작 성우답게 하울의 부드러운 미소년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있다.
단정하고 교육받으며 보호받고 자란 느낌이 든다. 미국인 하울과 비교하면 한층 친근한 목소리다. 기숙학교에서 자란 다정한 남자 친구라는 인상이다. 엄친아. 군더더기 없고 보들한 벨벳의 촉감이 생각난다. 순정만화 남주인공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델이나 아이돌 배우일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연예인이라도 이미지는 반듯할 것 같다.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어린애 같은 건 어휘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본인 하울을 한마디로? 10대 후반, 20대 초반 사연 있는 순정만화 남주
내 귀에 조금 더 익숙한 목소리라 그런지 키워드를 뽑아내기가 어려웠다. 나에게 한국 하울이 첫 하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느낌이 좀 비슷한 일본 성우와 계속해서 비교를 했는데, 큰 틀에서의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일본 하울이 온실에서 자란 기숙학교 남주라면, 한국 하울은 비교적 곱게 자랐지만 그래도 겪을 일은 다 겪은 남자라는 인상이 든다. 귀공자 같지만 마냥 고귀한 것보다, 능글거리며 장난도 치는 면이 있을 것 같다.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있고 또랑 하게 굴러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한국인 하울을 한마디로? 알고 보니 부자였던 20대 중반 옆집 오빠, 교회 오빠
처음 프랑스 하울을 보고 나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던 게 생각난다. 프랑스 더빙판 하울이 너무 엄청나니까 제발 봐달라고.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하다.
다른 언어를 쓰는 하울한테는 귀공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프랑스어를 하는 하울은 왕자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그럴만하다. 첫 등장 장면 대사 맥락으로 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성격을 귀티 나게 포장한다. 언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목소리 자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첫 등장 장면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매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처음 그 장면이 너무 잘 뽑혀서인지, 언어 때문인지, 아니면 연기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후반 왕위가 싫어서 도망 다니는 왕자
키워드를 저렇게 뽑았지만 하울은 하울이다.
독일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목소리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부드러움과 허스키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허스키한 목소리로 등장해서, 갱스터 같은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조금 날라리티 나는 갱스터였는데 끝에 간질 하게 oder?라고 살랑살랑 붙여버리니까 녹았다. 프랑스나 일본 하울이 귀공자 같아서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독일어 하는 하울이 저리 비키라며 밀쳐버렸다. 굉장히 살랑살랑하면서 부드러운데, 특유의 긁는 발음 때문인지 허스키한 쇳소리가 난다. 둘이 합쳐져 굉장히 오묘하다. 원래 하울은 겉모습은 번쩍번쩍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에 괴물인데, 거기 부캐로 독일 하울을 추가시켜도 될 것 같다. 피투성이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모습으로 길목에 주저앉아 몸을 기대고, 쓰게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숨어 잠시 휴식을 취할 것 같다.
독일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중반, 뒷 세계를 주름잡는 갱스터
잘생긴 힌디어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는데, 하울이 딱 그렇다.
일단 힌디어를 하는 하울은 미소년보다 좀 더 으른 으른 한 느낌이 든다. 단단하고 성숙하고 어딘가 빠지지 않는 느낌이다. 앞에 미소년 미남 하울들이 솜털 같고 부드러운 목소리라면, 힌디어를 하는 하울은 좀 더 묵직하고 매끄러운 느낌이다. 그래서 친근한 느낌보다는 좀 더 나랑 생활 반경이 먼 사람인 것 같다. 한국 하울을 옆집 오빠 교회 오빠처럼 마음만 먹으면 어떤 커넥션을 만들 수 있는 범위의 사람으로 묘사했다면, 힌디 하울은 좀 더 노력해야 만날 수 있는... 예를 들면 거래처의 거래처 사람. 거래처 본사 본부장 같은 느낌이다.
인도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후반, 30대 초반 K드라마 속 거래처 본사 본부장님
솔직히 놀랐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첫 등장에 갑자기, 실로이 실로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데도 그 높낮이가 너무 신기해서 계속 들었는데 중독되겠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감미로워서, 자칫 낯선 억양인데도 매력적으로 들린다. 리뷰를 위해 계속 듣고 있는데, 살짝 공기가 섞여서 빠지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베트남어 특유의 뚝뚝 끊기는 느낌이랑, 성조가 은근히 어울린다. 성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지 목소리 색깔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다. 베트남 사람인 친구가 있었지만, 이렇게 잘생긴 베트남어는 처음이다. 다른 하울과 이미지 자체는 비슷하지만 좀 더 벤츠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베트남어를 하는 하울이 좀 더 처연하게도 보인다.
베트남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중반 사연 많은 외강내유 처연남
중국어 하울에 대한 내 감상은 좀 복잡하다. 첫 등장의 인상과 비교했을 때 갈수록 이미지가 바뀌기 때문이다.
일단 베트남어와 비교했을 때 비해 언어적인 특성 때문에 좀 더 매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하울의 캐스팅이어서 목소리가 부드러운 축에 속했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첫인상은 어떤 범죄조직의 간부였다. 뒤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하지만, 내 앞에선 정체를 숨기고 다정한 척 연기하는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다정한 척이 연기가 아니라 본래 성격인 게 드러난다. 그리고 저 장면 뒤에 나오는 하울은, 범죄 조직이라기보다 유학생이나 믿을만한 남자 친구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라 아직도 아리송하다. 하울 자체의 단정함은 있지만 어딘가 어딘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함이 있다.
중국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후반,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다정하지만 어딘가 싸한 남자
하울이면 다 좋을 줄 알았지? 진짜 다 좋네.
이 리뷰를 적기 전에 시험 삼아 여러 언어를 대충 들어봤었다. 그때 스페인어도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여서 실망했었다. 그때의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해주고 싶다. 좋다. 스페인어 특성상 J를 공기 소리로 내야 하는데 그게 적절하게 섞여서 공기반 소리반 조화를 잘 이룬다. 그리고 그게 섹시하게 들린다. 스페인 드라마를 꽤 봤어서 그런지 조금은 올드하게 들렸는데도 확실히 미성이라는 게 티가 났다. 힌디어 하울이랑은 좀 다른 느낌이지만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굵고 선이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라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첫 등장 장면을 다시 돌려보니, 농염하다는 느낌을 왜 받았는지 이해가 됐다. 약간 웃음 섞인 것 같으면서도 강약이 있는 말투라 그런 것 같다.
스페인인 하울을 한마디로? 20대 후반 (30대는 절대 아님) 사람 다루는데 능숙한 회사나 조직의 고위층 간부
이렇게 총 9개 언어를 하는 하울을 듣고 비교해보았다. 세상에 누가 이런 걸 할까 싶지만 그런 일을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랴. 모든 하울이 전부 미성에 부드러운 느낌이었지만 조금씩 그 색깔이나 이미지가 달랐다. 과몰입해서 아예 다른 작품의 주인공처럼 만들어버렸지만, 그렇게 하울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꽤 재밌었다. 각자 목소리 색깔이나 채도도 다르고, 가끔은 물리적인 나무스틱이나 매끈한 강판이 떠오르기도 했다. 통통 튀는 동그라미가 연상될 때도 있었고,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 생각날 때도 있었다. 캐릭터 서사가 있기에 큰 틀은 비슷하지만 그래도 언어적 특성이 더해지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이었던 하울을 꼽는다면,
순으로 하겠다.
원래는 프랑스어 하는 하울이 제일 충격적이어서 (좋은 의미로) 1위였는데, 비교하기 위해 계속 듣다가 갱스터 이미지를 떠올리고 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하울이라는 인물을 좋아한다면 넷플릭스로 달려가서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을 테니까.
참고로 넷플릭스 광고는 아니다. (광고였으면 좋겠다.)
하울이 처음으로 나오는 그 장면 바로 전에 소피를 붙잡은 군인, 그중에 수염 없는 쪽 남자의 목소리가 항상 좋았다. 잘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울 목소리를 들으려고 계속 그 장면을 같이 듣다 보니 그 남자의 목소리도 꽤 미성이어서 놀랐다. 9개국 전부 웬만하면 미성이었다.
그리고 더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뒤로 넘어가 다른 장면도 봤는데 지나가다 들었지만 캘시퍼 목소리는 한국 성우가 제일 귀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