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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Nov 17. 2019

7-3. 키스한 것보다 더 설레게 하는 남자

일곱 번째 데이트 - 광부씨



‘왜!? 첫날부터 키스하자더니 왜 오늘은 말도 없이 가는 거지? 오늘 분명 분위기 좋았은데? 밀당하는 건가? 아니면 나 혼자 착각한 건가? 사실은 내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은 건가? 그런 거면 손은 왜 잡은 거지?!’


온갖 분석과 추측이 내 머릿속에서 아우성 쳤다.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가 집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문자를 보냈다.


‘집에 갔어?’


짧은 문자를 보내 놓고 기다리는 몇 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지금 집 앞에 주차했어. 오는 길에 세차했거든.’


나를 데리러 오면서 세차를 미리 못했다며 민망해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늦었구나, 안도하면서 답을 보냈다.


‘그랬구나. 서두르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니야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 오늘 너무 즐거웠어. 저녁 다시 한번 고마워.’

‘두 번째 데이트는 내가 낸다고 했잖아.’

‘우리 다음 데이트가 너무 기다려진다.’

‘나도. 오늘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음... 마지막에 키스가 없어서?’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분명 그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키스, 아니면 허그’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거든.’

‘실망시켜서 미안해. 첫 데이트에서 내가 너무 과감하게 나간 거 같아서 이번에는 참았어. 삼세번째 도전?’

‘과감하다고 생각 안 하고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나 한 번도 첫 만남에서 키스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랬구나. 그럼 다음번엔 꼭 키스해줄게. 사실 오늘 만나는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같이 있는 내내 그의 입술을 보며 부끄러웠던 것처럼 그도 줄곧 나와의 키스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걱정하고 망설였던 그의 마음을 그는 그렇게 고백했다. 나도 그에게 고백했다.


‘잘 모르겠어... 나 원래 두 번 만나서 키스할 만큼 빨리 나가지 않는데. 그런데 왠지 너와는 하고 싶었나 봐.’

‘응, 나도 같은 느낌이야.’


키스가 없이도, 아니 키스한 것보다 더 설레게 하는 남자를 만났다. 나는 그가 키스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나에 대해, 우리의 관계에 대해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고 하는 싶은 마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키스보다도 더 설레고 소중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꼭 키스를 해주겠다는 그의 약속은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내 마음을 달뜨게 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N은 멕시코에서 금광을 개발하는 캐나다 회사에서 일을 한다. 현장관리자의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한 주는 멕시코 현장에서, 다음 한 주는 토론토 본사에서 일을 했다. 토론토와 멕시코시티는 비행기로 5시간, 멕시코 공항에서 현장까지는 다시 차로 5시간 걸리는 거리를 매주 다녀야 하는 그에게 데이트를 할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토론토에 있는 동안 그의 우선순위는 아이들이었다. 그는 그런 그의 상황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솔직하고 분명하게 얘기했었다. 나에게도 삶의 우선순위는 나의 아이와 직장이기에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나 자신도 데이트를 자주 할만한 여유는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The Mine, Mexico


하지만 그는 그동안 그런 그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어떤 소개팅녀는 그가 데이트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고 화를 냈고, 어떤 이는 자기가 원할 때마다 만나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고, 또 어떤 이는 남자 셋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남자를 저울질 중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N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도 그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던가 보다.


관계가 아니라 연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사람이 아니라 그 연애와 자신의 이해관계가 먼저 보인다. 물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연애를 한다. 기쁨과 즐거움보다 슬픔과 괴로움을 주는 연애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과 즐거움이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감정적 유대에서 오는 것이 아닌 순간적이고 물질적인 상황들에서 얻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채워지지 못하고 소비될 뿐이다. 소비되고 난 이후에는 또다시, 그리고 더 많이 원하게 되고 결국 관계는 이기심과 회의감으로 채워져 슬픔과 괴로움으로 점철된다.


내가 그에게 끌렸던 것은 그가 참 좋은 사람 같다는 그의 첫인상 때문이었다. 밝고 바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그 사람의 이런저런 것을 따지고 분석하지 않아도 느껴졌었다. 그냥 그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서로가 좋아하는 취향이어야 하는 것은 호감을 가지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 같은 것이니까. 내 스타일이든 아니든 모르는 사람은 일단 경계하고 보는 내게, 그렇게 첫 만남에서 마음에 햇살이 비추듯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두 아이를 둔 싱글대디인 것도, 절반 이상은 출장으로 이곳에 있지 않은 것도, 그래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없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적인 문제들보다는 '그 사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많은 경우 극복할 수 있지만,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바꾸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비싼 값을 치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 번째 데이트 다음 날 그는 출장을 떠났고, 약속했던 첫 키스는 열흘을 기다려야 했다. 열흘 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나누었다. 하지만 열흘 뒤의 세 번째 만남이 아직까지 어색하고 쑥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첫 번째와 두 번째 만남보다 서로 더 수줍었던 것은 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날은 그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날이라 더 긴장되기도 했고, 분명 그도 나와 같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 The Mine,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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