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思적인후기]어떤 날들/앤드루 포터

힘들었던 날들도 결국엔 어떤 날들이 될 거야

by 거창하지않은

감정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서


어떤 날들은 가족보다 일이 늘 우선인 아빠, 남편의 모습에 지쳐 이혼을 결정하는 엄마, 엄마의 투사적 감정을 겉으로는 묵묵히 받아주지만 오히려 점점 더 엇나가는 첫째, 착실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사고를 일으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둘째, 이렇게 4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다.


어떤 날들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은 뭐랄까 마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몇 바퀴 돌려지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감정통돌이‘란게 있다면 요런 저런 감정에 흠뻑 젖어보고 휘몰아쳐보고 탈수코스까지 야무지게 돌려서 탈탈 털려진 느낌.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주 착실하게 4명의 시점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이렇게 각자의 감정을 차곡차곡 돌아가면서 쌓아 올려주니 모두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누구의 편이란 걸 들기 어려웠고 누구를 미워하기도 어렵고 각 인물의 행동과 결정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같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만큼 소설이 재밌었고 즐거웠다는 뜻이다. 문학은 흔히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들 하니까 말이다.


섬세한 감정 묘사로 인정받고 있다는 앤드루 포터에 대한 평가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인 ‘사라진 것들’이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기대가 된다.


나의 상처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과 상실, 가족의 해제 등 이 책의 다양한 후기들이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은 과거의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네 명의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네 사람은 한 가족인 재미있는 설정이고. 아예 상처를 외면해 버린 사람인 클로이, 아직도 상처를 계속 문지르면서 덧나게 하고 있는 사람인 케이든스, 일단 상처를 인지하고 밴드를 붙여는 놨지만 수시로 뜯어서 보는 사람인 리처드, 그리고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인 엘슨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핵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벽에 걸린 이 모든 과거의 소품들의 핵심이 그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리 멀리 떠나도 과거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이건 어쩌면 형벌이 아니라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쩌면 두 번째 기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인지도 모르겠어. 바로 얼마 전에 딸 하나를 잃었지만 이제 막 딸 하나를 얻게 되었어. 이것이 클로이에게 저지른 모든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라는 걸 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 기회라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나는 우리는 결국 엘슨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발목 잡혀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말이다. 엘슨(소설 중 남편이자 아빠)은 이 소설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시련이 있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상처에만 얽매여 있지는 않을 것이며 한 번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방법을 깨달은 사람은 또다시 또 다른 상처를 마주했을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잘 지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 있는 어떤 이유, 즉 목적이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아파트로 돌아와 글을 쓰려고 앉아 있거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면 예전의 외로움이 다시 찾아오며 생각은 과거로, 휴스턴으로 되돌아갔다. 사실 그는 휴스턴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말도 하지 않는 브랜든이나 최근에 애인과 살림을 합친 아버지나 사이비 조사에 터무니없는 돈을 쏟아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인 척하고 싶었고, 그 시절의 삶은 다른 사람이 살았던 다른 삶이었던 척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처럼 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정신은 과거로 흘러들어 가 지난봄의 사건들을 되풀이해 생각하곤 했다. 그런 순간들이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썼다. 그는 동생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 후회와 두려움, 분노 등을 다 토해냈다. 그가 편지를 쓰는 상대는, 그리고 나중에 그 글을 이메일로 보낸 계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리처드(소설 중 첫째 자녀)는 아마 곧 언제까지고 그 과거의 상처들을 모르는 척, 나와는 상관없는 척 외면하면서 살 수는 마주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걸 곧 깨달을 것이다. 상처를 외면하고자 떠난 클로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적어도 감정을 통해냄으로써 대면하는 과정을 여러 번 겪음으로써 해소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만의 길을 곧 찾을 것이다.


케이든스와 클로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보이지만 곧 상처를 직시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거치리라 희망해 본다. 문득 베스트셀러 소설들에 약간의 공통점이 보이는 듯하다. 많은 책들이 과거를 잊고 싶고 모른 체하고 싶은 사람들 그러나 결국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 고통이라 생각되는 과거를 안고 나름의 방식을 찾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공통 주제를 가진 소설들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공감하는 것을 보니 과거의 상처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것 같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낀 적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되찾느냐고. 자신의 잃어버린 일부를.”
“못 찾아요. 그냥 없는 채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내야 해요.”


힘들었던 날들도 결국엔 어떤 날들이 될 테니까


작가님이 책의 제목을 ‘in between days’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작성한 외국 기사를 읽어보니 한 노래의 제목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몰랐는데 더 큐어(The cure)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이고 이 노래는 1985년 히트곡이란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지만 인류 보편적으로 확대 적용해 보자면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이별과 그에 따른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며 애쓰는 감정에 대한 노래이다. 찾아보니 엄청 유명한 노래가 맞나 보다. 영화 싱스트리트에서도 커버했다고 한다. (오리지널 버전을 들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커버 버전 들어보니까 알겠다!)


https://youtu.be/scif2vfg1ug?si=EA3NY-LjHj3mncZK


https://youtu.be/dGzxqlsbKqQ?si=l0wJcHaeP7iKv236



작가의 의도가 그러함에도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제목이 어떤 날들인 이유는 힘든 지금 이 순간도 결국 언젠간 어떤 날들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너무 힘들어서 이것보다 더 힘든 날들이 내 인생에 또 찾아올까 싶을 만큼 힘들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맞아, 그런 날들이 있었지.” 하는 순간이 분명 오게 되니까. 여러 과거의 날들과 똑같은 어떤 날들로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엔 어떤 날들이 될 그날까지 힘들 순간을 잘 흘려보내보자고 말이다.


“언젠가 오늘을 돌이켜보며 웃는 날이 올 거야.” 그가 말했다. “언젠가 이런 것들도 정말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