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치우천황)
업계 1위에 자리하는 만큼 사주나루에 선생님들의 실력은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상세페이지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치우천황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무당이기도 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영남루에서 처음 만난 신령님부터 20년 동안 함께하게 된 신도이야기까지.
이상 설명하기보단 바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게 좋을 듯싶다.
안녕하세요 치우천황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치우천황
안녕하세요 사주나루 치우천황입니다.
무당이 되기 전에 보험회사 지점장이자 기독교인으로서 나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고난 신줄 따라 신령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어요.
밀양 영남루에 아랑각이라는 사당이 있어요.
아랑각 나무 아래서 노란 저고리에 적색 치마를 입고 댕기머리를 한 아랑아씨가 생시처럼 나타나셨어요.
가셔라 해도 손에 풍을 쏘시면서 '너의 주신이니라' 하시고는 몸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꿈자리에 故 박정희 대통령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돌아가실 때 모습이 매일밤 또렷하게 보였어요.
김대중 대통령님께 천도복숭아 세 개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꿈도 꿨고요.
저절로 안 보이는 것 돌이 보이고 들리지 않은 것들이 들렸습니다.
어느 날엔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갔는데, 제가 통화하고 있는 직원한테 오토바이 안된다고 양손으로 막 X자를 쳤어요. "오토바이 안된다 몇 월 며칠 몇 시쯤 사고 난다"라고요.
그날부터 그 직원이 "언니야, 우리 아들내미 오토바이 산다고 난리다. 옷 잡고 말려도 안 들어먹는다" 하면서 맨날 전화가 오더군요.
손쓸 방법이 없냐면서요.
당시에 "시댁에서 좌측으로 700미터 가면 돌복숭아 나무 있다. 돌복숭아 가지랑 이파리 동쪽으로 뻗은 거 꺾어서 잎 잘게 썰어서 차우려서 맥여라. 사고도 덜나고 액도 면한다"라고 일러줬어요.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언니야 우리 시아버지가 70년을 언양 시내 여기서 살았어도 돌복숭아 나무는 못 보셨단다." 하기에 "돌복숭아 나무 있으니까 다시 가보라."라고 제가 말을 하더군요.
결국은 나무가 있었고 차로 끓여서 먹였답니다.
제가 사고를 예언했던 날에 아들이 사고가 났어요.
U시 대학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어디 한 곳 부러지지 않고 볼 뼈에 금이 약간 간 정도에서 그쳤어요.
후에 아파트서 밤낮으로 사람들이 점 봐달라고 현관문 두드리고 손님이 줄을 섰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1년 간 굿이든 치성이든 250건 이상을 해온 거 같아요.
굿당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사주나루까지 신당 신도님들 점사 봐드리고 일사 봐드리면서 하루를 보내죠.
2011년에 신내림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줄을 섰을 정도니 지금까지 많은 분들을 만나오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치우천황
신내림 받고 나니까 줄 서던 손님들은커녕 손님이 뚝 끊겼어요.
신내림 굿 해주던 신어머니는 신굿 끝나니 "옥미야 넌 신선생니 없다" 하시고는 저와 인연을 끝맺음하셨습니다. 암울했죠. 철저하게 외톨이로 살다가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신내림 받고 나서 첫 손님이었어요.
첫인상은 너무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부부였는데, 의문이죠.
'저리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뭐가 궁금할까?'
아내분이 임산부셨거든요.
손님맞이하려고 커피를 타는데 소복을 입은 긴 생머리 여자가 입을 맞추고 있는 게 눈에 자꾸 보이는 겁니다.
'뭘까' 하는 생각으로 커피잔 탁 내려놓으니까 한 7살 8살 돼 보이는 남자애한테 소복 입은 여자가 입을 맞추면서 '나 21살이야' 했어요. "애가 말을 못 하나요?" 했더니 남자분이 그렇다고 했어요.
9살인데 말을 못 한다고....
제가 "21살이라는데" 하면서 여자 생김새랑 옷차림을 말했더니 남자분이 죽은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죽은 나이가 21살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귀신은 못 뗀다고 울산서 유명하신 선생님 연결해 드렸는데 굿을 하라고 하셨죠.
근데 그분들이 아들 말 트이겠다고 굿도 하고 안 해본 게 없다면서 저도 소문 듣고 찾아온 거래요.
돌아가시고 신령님이 내가 풀어주겠다는데 왜 그러냐고 호통을 치셨어요.
"할아버지 애가 귀신이 붙었어요"하니 "풀어주겠다고 왜 막냐"하시길래 "어떻게 할까요?" 하니 부적을 내려주라고 하셨어요. "얼마 받을까요" 하니 "77만 원" 하시기에 할아버지가 77만 원에 부적 내려주시라 했다" 했더니 다음날 일찍이 봉투에 넣어서 찾아왔어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부적 내려드렸는데 그 애가 "엄마" "엄마 안녕하세요" 정도로 말을 바로 했어요.
그때 무당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이 생겼어요.
후기를 보면 오랫동안 선생님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이유가 뭘까요?
치우천황
점 보기 시작한 지도 참 오래됐어요.
20대 초반서부터 점이 보였는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게 내림 직전에 아파트 입주하고 나서부터 에요.
그때가 우리 딸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제가 학부모 운영위원이라 학부모들이랑 술도 마시고 모임도 했는데 저도 모르게 앞으로 어찌 되고 어떻게 살 거다 하면서 줄줄이 앞날을 말해줬어요.
그때 한 말이 틀린 게 없어서 아직까지 제 신도로 만나고 있어요.
20년간 제가 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신 분들 다 잘 살고 잘되고 계시네요.
그렇게 되기까지 야밤에 기도도 많이 했죠.
할머니도 무당 증조할머니도 무당 어머니도 당산제를 45년이나 지내셨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신령님 말 따라 잘 불리고 있어요.
2019년에 '위대한 한국인 민속 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어떤 상이고 수상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치우천황
2019년 위대한 한국인 대상에서 민속 방송 부분 대상을 받았어요.
민속 무속을 다양하게, 널리 알리고 잘 알아주지 않는 민속 전통인 무속, 굿에 대해 대중에게 닿기 위한 노력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어요.
유튜브에 선생님 굿하는 영상을 많이 봤어요.
굿을 하고 나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전화상담에 기도까지 하시잖아요.
평소에 어떻게 체력과 시간 관리를 하시는지 궁금해요.
치우천황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위해 몸이 정갈해야죠. 하루에도 몇 번씩 집 앞에 산에 올라요.
산행이 어려우면 정원이라도 걷고요.
강의 민물 용왕 용왕대신을 찾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은 걸어요.
사주나루에서는 매일 아침 열 시에 접속해서 네시에 끄고 잠을 자요.
대면점사나 일사 일정이 있을 때는 거기에 집중하죠.
제가 굿을 자주 하는 건 많은 분들께 바른 공수와 맑은 영으로 상담하고자,
신을 한 단계 더 위하기 위해서 굿을 하죠.
굿은 제가 맑은 기운으로 바른 상담을 해드리기 위한 노력으로 봐주시면 좋을 거 같네요.
드리고 싶은 질문이 많은데 모두 드릴 수 없어 너무 아쉽습니다.
마지막질문인데요.
오늘 인터뷰를 수락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치우천황 마음대로 일이 안 풀리고 경제 위기가 찾아오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등등
답답한 마음에 찾게 되는 게 무당이잖아요.
그때 저를 찾아주시면 어두운 밤길에 길을 잃고 헤매는 분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2025년 한 해 사주나루를 찾는 분들이 진심으로 잘 풀리고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