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론(11)
사주에 '갑(甲)'이 있으면 어지간하면 힘든 티를 잘 내지 않는다.
갑(甲) 말 그대로 '내가 일등이 되어야 해' 하는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부분이 힘드냐 물으면 그제야 고민을 토로하고는 자기 얘기를 터놓는다.
그중에서도 일지에 술((戌)이 있는 갑술일주(甲戌日柱)가 제일 이런 성향이 강하다.
감술일주는 양 어깨에 항상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다.
이 책임감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적정 책임감은 인생의 원동력이자 연명하는 힘이지만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과하면 독이 된다. 어떻게 보면 갑술일주는 독이 된다는 걸 알아도 기꺼이 책임감을 짊어지려 한다.
제목을 보면 의아했을 것, 책임감이 독인데 내려놓지 말라니 먹고 죽으라는 건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믿고 계속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간 자신을 옭아맨 것을 일정 해소하고 다루는 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술일주의 책임감은 갑천간과 술 지지를 먼저 살펴보면 된다.
갑(甲) 천간은 계절의 시작과 하루의 시작이다.
한마디로 봄과 새벽이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여야 하고 자기가 제일 빠르게 움직이려 한다.
앞서가는 사람이 없으니 그래서 갑은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는 거다.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갑목은 거목으로만 볼 순 없다.
되려 갑목은 여린 잎의 새싹에 가깝다.
씨앗이 단단해진 땅을 뚫고 올라오는 건 나무가 아니라 푸릇하고 여린 새싹이다.
때문에 그만큼 여리다.
책임을 혼자서 모두 짊어지기 앤 턱없이 벅차다.
그래서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부담을 갖는 것이 갑목이다.
갑목에게 책임감이란 자기가 최고이고자 하는 야망과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배려 본능이다.
술토(戌土)는 계절로 보면 늦가을이다.
굴곡 없이 평탄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고 넘어가는 인자이다.
그래서 술토는 안정과 든든함을 의미한다.
술이 갑목의 일지로 오는 갑술일주는 앞장서서 무리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쉽게 말해 진돗개가 집을 지키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갑술일주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요소인 수 인자가 없으면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안정과 책임을 도모하기까지 고난을 감내하는 과정에 수가 없으면 참을성이 부족하다.
특히나 갑술일주는 신과 유를 공망으로 갖는다.
쉽게 말해 인내를 의미하는 정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하다 하고 내려놓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면 부담감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갑술일주는 예외이다.
전쟁터에 갑자기 전두지휘하던 장군이 죽으면 슬하에 있던 전우들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잔인하지만 그래서 갑술일주는 고독하고 쓸쓸하다.
갑술일주의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 핵심은 인내심을 의미하는 수 기운과 지장간에 있는 정관을 찾는 것이다.
쉽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안정을 찾는 능력도 갖췄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감을 내려놓으라 하는 건 갑술일주를 되려 패닉에 빠지게 만든다.
승리를 코 앞에 두고 포기하는 것이다.
힘겹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사주의 장점을 살리고자 한다면 인내와 배움을 통해 끝까지 이겨내는 능력을 키우는 게 좋다.
갑술일주는 일단 편재 성향이 강해서 편재의 장점을 살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갑술일주 남자는 수직적인 무리 생활을 견디기 힘겨워할 수 있다.
그래서 사업가가 어울린다.
그러나 아예 직장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재물과 관련된 금융업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로 직장을 갖는 것도 좋다.
갑과 술 둘 다 교육에 재능이 탁월하니 교육도 좋다.
연애운 또한 좋다. 편재는 사주 상으로 애인을 의미한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큰 걸림 돌은 없지만 이성관계가 혼잡하다면 구설에 휘말린다.
배우자는 평생 애인처럼 느껴지도록 애교가 많으면 좋다.
사주에 토가 많으면 재혼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부부관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고 배우자 건강에 특히 주의해라.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성을 만나고자 하면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 복이 좋은 건 아니니 결혼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일단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사주에 관성이 없을 시 결혼하기 어렵다.
갑술일주 여성은 자식의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출산을 하고자 한다면 노산을 주의하고 적령기에 결혼하는 게 이롭다.
우선적으로 갑술일주는 결혼 후에 가정에 헌신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행복해서 헌신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고심이 있을 경우가 많다. 노고를 알아주는 남편을 만나면 이롭다.
남녀불문 기묘(己卯), 임오(壬午) 일주와 궁합이 좋다.
갑술일주 유명인으론 소설가 공지영 씨, 아나운서 김성주 씨, 배우 엄기준 씨, 가수 장기하 씨가 있다.
예전부터 작문, 노래, 연기, 언변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 대다수는 상관(傷官)을 쓰는 사람이라 했다.
갑술일주의 경우에는 지장간에 처음으로 오는 상관을 사용한다.
정리하자면 갑술일주는 상관과 관련한 재능을 보이고, 편재를 이용해 재물을 모으고, 정관을 이용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공지영, 김성주, 엄기준, 장기하 씨 모두 자신만의 확고한 색깔을 보이고, 이로 인해 재물을 모았으며, 종사하는 분야에서 인정받았다.
갑술일주는 밝고 긍정적이다. '나는 아닌데?' 싶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금껏 마지노선 직전에 만족하진 않았는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진 않은지 성찰해 보길 바란다.
어떤 관계를 책임진다는 건 중압감과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점이 갑술일주가 갑술일주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니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꼭 살펴보길.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갑술일주에게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