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론(24)
사주팔자에서 일주(日柱)란 네 가지 기둥 중 하나로 나를 의미한다. 하지만 환경, 부모, 배우자 등 상황에 따라 삶은 천차만별로 나뉜다. 때문에 일주만으로 모든 삶을 구성하고 관철할 순 없다. 최근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일주론 쓰면 누가 사주를 보러 와?"
일주론을 읽고 사주를 알 수 있다면 사주나루에 매달 10만 건의 상담이 가능할까?
대신 일주에서 드러나는 성향은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정도의 객관성과 독해력만 갖춘다면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신분제가 폐지된 건 19세기 후반이다.
2세기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노예라는 단어는 모두에게 익숙하다.
대신 노예를 움직이게 하는 주체가 일이냐, 사랑이냐, 가정이냐가 중요하다.
개인으로만 본다면 SNS냐 호르몬이냐 운동이냐 등 얼마든지 노예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까지 포기하면서까지 얽매인다면 노예와 다를 바가 있을까?
나를 포함해 나의 주변인, 애인 배우자, 자녀, 직장 선후배 친구 등 정해일주(丁亥日柱)에 해당한다면 이 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맞춤형 노예가 되기에 적합한 일주가 정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특정 분야에 얽매여 주체를 잃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정해일주가 노예라는 건 아니다.
원국 구성에 따라 정해일주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혹은 잘 모르겠다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노예로 살지 않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우선 한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정해일주는 노예 되기 맞춤형 일주다' 하고 말문을 텄지만 '정해일주가 안 좋은 사주'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해일주는 관성(官星)을 강하게 쓰니 어디 내놔도 꿀릴 게 없는 사주다.
재물도 차고 넘치기보단 여유 있는 정도로 따라온다.
일주 자체로만 보면 좋은 일주다.
되려 정해일주가 말 그대로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는 말은 일주보다 팔자 전체를 관망해보라는 뜻이다.
글자 간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니 복합적으로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주만 보고는 정해일주가 멍청해서 노예가 되는 건 아니다.
정해일주는 일간 정화(丁火)에 일지 해수(亥水)가 정관(正官)으로 들어온다.
정화 자체로도 정관 성향을 갖고 있기에 일간과 일지 모두 정관이 들어온다.
그러니 정해일주는전형적으로 정관의 성향이다.
원리원칙을 우선으로 보수적이고 주어진 임무와 체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명예욕도 강하고 이를 해결할 능력도 있다. 그래서 공무원 직장인 등에 잘 어울린다.
어떤 면에서는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사주일 수도 있다.
또한 스스로 굉장히 깔끔하고 체계적인 사람이니 타인에게 신뢰도 얻을 줄 안다.
신뢰와 칭찬을 바탕으로 움직이니 인간관계도 잘 형성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도대체 어디가 노예라는 거지?" 싶을 거다.
도리어 정해일주들에게 묻고 싶다.
내면에 답답한 그 포인트가 무엇인지.
아마 그 포인트는 정관을 깰 수 없다는 부담감과 조급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자승자박(自繩自縛)
1.명사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기 자신이 얽혀 곤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명사 불교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움을 만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해일주를 노예로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내 존재가 입증된다.
이런 생각이 어떤 대상(사람, 물건, 직장 무엇이 되었든)을 중점으로 자신을 옭아매게 한다.
스스로 집착을 만들어내니 해소할 수 없다고 여기고 부담감만 증폭된다.
이는 곧 생각과 행동을 검열하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정해일주가 하는 고민은 대부분 일의 성과로 초조해지거나 가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스스로 한탄한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하지만 대부분 이는 비약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정해일주는 두 발자국 떨어져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알고 보면 일은 서서히 성과에 도약하고 있으며, 가족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족하지 못하니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고 현실을 부정하는 거다.
양손과 양발을 묶고 두 눈과 두 귀를 막는 셈이다.
그 누구도 정해일주에게 노예가 되어라 한적 없다.
이런 정해일주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집스러운 독재자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 간극이 좁혀질 수 없다.
평행선이니 자신을 계속 고립시킬 수밖에 셀프노예는 구원도 셀프다.
정해일주의 정신적 불안감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잠근 자물쇠를 누가 풀 수가 있겠는가?
가장 베스트는 인성(印星)을 살리는 것이다. 관성의 강한 힘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성취와 적절한 보상을 줄 수 있도록 학문이나 기술 자격을 획득하는 게 좋다.
그게 아니라면... 종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실제 이런 루트로 종교인이 된 정해일주가 많다.
괴로워본 사람이 괴로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셈인 거다.
어느 쪽이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표치에 자기 자신을 옥죄이지 말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익보 하는 사람 (상사, 배우자, 자식)이 있다면 현재 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해일주는 남자 여자 모두 연애와 결혼에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원체 깔끔하고 점잖아서 외적으로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자기 생각에 과중되거나 상대에 대한 사랑이 집착이 되면 곤란해질 수 있다.
연인 배우자를 이유 없이 의심하는 의처증을 주의해라.
특히 남자는 가부장적인 면모를 보이기 쉬우니 그런 행실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라.
정말 통제하고 싶어서라기보단 '내가 가족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정해일주의 기운은 여성일 경우 좀 더 강하게 표현된다. 그러니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주의해라
다른 글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의 행동 지침을 알려 주기보단 정해일주는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바로 잡아야 한다.
줄곧 말했다시피 같은 정해일주라도 딱 맞는 컨설팅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주가 같아도 다른 삶을 사는데 일주 같다고 같은 삶을 사는 건 말 그대로 흑백논리이다. 확증편향이다.
제삼자의 관점으로 생각하기가 어렵다면, 사주 간명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팔자 전체를 조망해 보며 나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다.
명리학으로 삶을 객관적으로 관철하고 재설계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글이 알을 깨고 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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