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최근, 속초 바다를 보고 올 일이 있었다. 한 청년이 바다 사진을 마구 찍어대더니 자신을 찍어달라며 부탁하는 거다. 청년은 자신의 상체를 다 덮고도 남는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물으니 전국 배낭여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청년이 말하길 "저는 여행이 너무 좋아요, 엄마가 말하길 제 팔자에 역마살이 있대요."라며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역마살(驛馬殺)이라는 말은 사주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브런치만 봐도 역마살을 검색하면 명리 글보다 여행 글이 대부분이다. 명리학 글을 발행하는 입장에선 꽤 반가운 일이지만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반가움과는 별개로 우려되는 마음도 있다.
'나도 역마살이 있으니 여행으로 행복을 찾아볼까?'라는 생각에 무작정 집을 나서 떠날 예정이라면, 솔직한 심정으로 걱정이 앞선다. 노파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주풀이 경험상 역마살 존재 여부만 보고 여행을 떠나는 건 섣부르다. 도화살(桃花煞)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연예인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홧김에 떠난 여행에서 로망은커녕 어려움과 고초에 시달린 후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여행이 석연치 않더라도 그건 여행 작가들의 잘못도, 여행길에 올랐던 독자의 잘못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역마살이라는 요소를 '현대에선 좋은 살!'이라며 원색적으로 알려왔던 수많은 명리학자의 잘못이다. 그래서 기왕 역마살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된 만큼 정확하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행의 유종의 미를 꿈꾼다면 잠시 배낭을 내려두시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역마살이란?
역마살(驛馬殺)을 움직임을 가져오는 기운, 해외로 나가는 기운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역마살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옛날 농경사회에는 좋지 않은 살로 불렸다. 농경사회에서는 한곳에 정착해 농사의 결실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마살을 단순히 움직임이 많은 살, 해외와 연관 있는 살이라고 해석하는 건 정말 단면적인 해석이다.
역마살은 도화살과 마찬가지로 지지의 작용에서 오는 살이다. 전체적인 구조와 원리는 도화살 칼럼에서 언급했으니 맨 아래 링크를 첨부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역마살은 도화살이 발현되는 자(子), 오(午), 묘(卯), 유(酉) 자리에 인(寅), 신(申), 사(巳), 해(亥)가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寅)이라면 신자진(申子辰), 신(申)은 인오술(寅午戌), 사(巳)는 해묘미(亥卯未), 해(亥)라면 사유축(巳酉丑)이 역마살이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예를 들자면 일지에 인(寅)이 있고 다른 지지에 신(申), 자(子), 진(辰)이 온다면 일지 인(寅)은 역마가 된다. 외우거나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 없다.
*요즘은 만세력 확인이 편하므로 간단히 생년월일시만 입력하면 역마살의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역마살에 해당하는 인(寅), 신(申), 사(巳), 해(亥)는 지지 삼합에서 생지(生支)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생지란, 기운이 생성되고 퍼짐을 뜻한다. 한 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생명력과 활동력이 가장 강한 글자이다. 그렇다 보니 역마는 활동력을 대표하는 인자가 된다. 그냥 활동력도 아니다. 항상 새로운 계절을 시작해야 하는 생지이기에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 동시에 어리숙하고 조급한 면도 가지고 있어 역마살이 오면 마땅히 이루는 것 없이 떠돌아다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정말 다수의 역마살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지지 삼합의 작용력이 음양오행의 구성을 뛰어넘어 발현될 순 없다. 사주 구성 자체가 에너지를 분출하고 활동력이 중요한 사주라면 역마살은 긍정의 요인이다. 대표적으로 손흥민 선수의 사주가 재능이 역마살을 타고 날아오르게 되는 격이다.
그런데, 사주 자체가 정적이고, 한정된 공간 내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주라면 역마는 부정의 요인이 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수시로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거나, 불현듯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역마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역마살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주 전체를 먼저 조망해 봐야 한다.
내가 가진 사주가 역마살을 활용해야 사는 사주인지, 역마의 기운을 눌러야 사는 사주인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속초에서 만난 청년이나 브런치 여행기를 읽으며 역마살이라는 단어를 볼 때 노파심이든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역마의 기운을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해외여행이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더불어 재물,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역마의 기운을 누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해외여행은 소비, 고난, 시련 등 부정의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무작정 따라 하다 유종의 미는커녕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불쑥 떠나는 여행은 독이 될 수 있으니,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체계적으로 짜인 패키지여행이 그나마 좋다.
만일 정말 정적이고, 움직임이 적어야 하는 사람은 그냥 여행기를 즐겨 읽거나,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마를 다스릴 수 있다. 무작정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