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경하세요."
내가 하는 일은 5일장 장터에서 숙녀복과 신발을 파는,자칭 '사장'이었다. 5일장은 말 그대로 '5일에 한번씩 열리는 시장'.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한다는데 아침에 쫘악 늘어서 있다가 저녁에는 싹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흔히는 시골 5일장.
노래로도 유명한 화개장도 5일장 중 하나라 했다.
서울 근교라면 유명한 모란장이라던가 일산장, 포천장 등등. 찾아보면 많은 장이 1일부터 5일 순서로 나눠져 있었다. 내가 가는 장터도 장사를 배우게 된 1999년부터 1년전까지 5군데였다.
1일엔 양곡장, 다른 이름은 양촌. 예전에 전원일기로 유명했던 '양촌리'가 그무대라 했다. 2일엔 근처 김포장을 다녔지만 내가 다닐땐 남양주 장현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3일엔 일산장, 아파트가 즐비한 곳에 어울리지 않지만 역사와 전통있는 장이였다. 4일엔 양주 가래비장, 서울 한복판에서도 보기 힘든 티비 배우들을 여기서만 3번을 봤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장터였다.
마지막 5일에는 동두천장. 미군부대가 있는 곳이라서 미군 물건을 파는 시장도 사려던 사람도 많던 곳이라 했다. 지금은 옛날 명성 대신 이름만 남았다 했다.
다니는 곳이 경기도 위 아래 지역이라 근처에 공장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장터에 오는 손님도 외국인이 많았다. 특히 일하러 온 베트남이나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등등 동남아계 외국인이 많았다.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을 보면 비슷비슷해서 구별을 못한다고 하던데 내가 그랬다. 일요일이면 장터로 나오는 일행들이 꽤 있었다. 헌데 그들은 자기네 나라 언어로 소통하면서도 나한테는 꼬박꼬박 한국말로 "누나, 이거 얼마예요?"라고 했다.
서툰 사람도 있고,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단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한국말로 내게 물었다. 물건의 가격은 간단해서 5천원, 1만원, 1만 5천원 순서였다. 내가 하는 한국말을 못알아 들으면 핸드폰을 꺼내서 숫자를 찍어달라 했다.
그때도 구별 안되는 동남아계 사람들이 왔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서로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나는 어디 가는데 너는 어디 가니? 이런식의. 그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였다.
머리에 번개 맞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어로 서로의 이야기를 묻는다.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외국어로. 배운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모국어가 아님에도 의미가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언니와의 여행에서 자신감없이 돌아온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의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