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으로서 달력에 3일과 8일이 들어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공휴일 주말 상관없이 일을 나갔다.
아, 날씨가 궂은날도 빼고.
최소 아침 6시에는 기상해서 챙기고 나가면 6시 반, 7시.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1톤 프런티어에 고모님까지 포함 강 씨 가족 세 명이 아침 출근을 한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우리의 일터인 장터로.
가는 시간 운전하는 아버지는 흘러나오는 시사 프로 라디오를 들으시고, 고모님은 본인이 좋아하는 정당, 싫어하는 정당 이야기를 내게 하신다. 물론 조용히 듣다 몰래(?) 잠드는 건 안 비밀!
대략 장터에 도착하는 시간은 늦어도 8시 반, 9시.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짐을 내린다. 커피 타임이라고 한숨 돌릴 만도 한데 이미 자리 펴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혀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발을, 고모님은 종합 의류를, 나는 액세서리를 정리해서 깔아 두면 보통 낮으로 가는 10시. 아침 식사를 거르는 편이라 이쯤 되면 배에서 신호가 온다. 밥 좀 주소.
그런 아침 일상도, 점심 장사도, 저녁 마무리도 코로나 19 한방으로 막혀 버렸다. 20여 년 장사를 했어도 약 2개월간 줄줄이 쉬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굵어 죽는 건 둘째 치더라고 의욕이 없었다. 사람은 일로 사는구나, 절실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