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ber(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Curious(호기심이 많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삶에 대한 호기심을 뜻하는 이 단어가 최근 주류 시장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단순히 술을 끊는 금주나 억지로 참는 절주와는 결이 다르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음주를 스스로 자제하고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즐기는 문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게 금주절주와 무엇이 다른데. '소버 큐리어스'는 음주를 '가끔 즐기는 사치'로 대하는 일종의 태도다.
요즘 해외의 여성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You're not ugly, you're just broke"(너는 못생긴 게 아니라 그냥 돈이 없는 거야)라며 술에 쓰는 돈을 아껴서 외모를 챙기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라고 권유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건강을 챙기라고 권유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도 이와 비슷하다. 이 모든 것들이 '소버 큐리어스'의 확산과 관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뭐가 됐든, 일본어가 더 익숙한 나에게는 전부 낯선 단어이다.
'소버 큐리어스'는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루비 워링턴(Ruby Warrington)이 2018년 저서 『SOBER CURIOUS』를 출간하며 서구권에서 먼저 확산된 개념이다. 술을 무조건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마시지 않는 맨 정신'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그게 결국 절주 아니냐"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핵심은 타의나 억압이 아닌 '자발적 선택'에 있다고 한다. 절주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잖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나)들을 위해 한번 더 생각하고 적어보자면, 기존의 절주는 '억제'에 초점을, '소버 큐리어스'는 "왜 술을 마셔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문화적 '탐구'에 초점을 맞춘다.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마시지 않았을 때 얻는 맑은 정신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즐기는 선택이라는 것. 술을 마신다고 해서 반드시 정신이 탁해지는 건 아니라고.
조사에 의하면, 이 트렌드가 급부상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팬데믹 기간 중 외부 활동이 차단되자 전 세계적으로 '홈술'과 '혼술족'이 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주류 판매를 금지했을 정도로 주류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위스키의 열풍이 대단했다. 흔히 아재들의 술로 여겨지던 위스키는 새로운 취향을 갈구하던 MZ세대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산토리 카쿠빈의 가격이 치솟아도 물량이 없어 못 구하던 시기를 기억하는가? 내가 일본에 살던 2010년부터 2020년까지만 해도 산토리 카쿠빈은 이자카야에서 흔히 쓰이는 가성비 최고의 하이볼용 위스키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수요가 폭등하며 가격이 2~3배나 치솟았다. 내가 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괜찮은 위스키를 구하는 과정은 마치 포켓몬빵을 찾아 헤매는 것과 비슷했다. 매장이나 이벤트장이 오픈하기도 전에 가서 줄을 서는 오픈런은 당연했다.
하지만 2025년에 접어들며 그 뜨겁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한때 구경조차 힘들었던 산토리 카쿠빈이 대형마트 선반에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이면에 '소버 큐리어스'가 있었다니. 끝이 보이지 않는 과시적 과소비에 피로를 느끼고 현타를 맞이한 MZ들이 많아진 걸까, 아니면 술을 강요하는 구시대적 음주 문화에 대한 반발심이 마침내 임계점에 이른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사람들은 무작정 취하는 대신 "왜 마시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나 역시 건강 상태나 상황에 따라 무알코올(0.00%) 혹은 논알코올(1% 미만) 음료를 즐긴다. 가장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한때 일상의 소소한 재미였을 정도다.
한국의 주류시장도 이 트렌드를 탔다. 무알코올 / 논알코올에서 좋은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칭따오 논알콜릭'이나 '하이네켄 0.0'을 "그나마 맛있네~" 하면서 쟁여놓고 마시던 내가 국산브랜드인 '카스 올제로'로 갈아탔다가 요즘에는 하이트진로에서 나온 '하이트제로 0.00'을 쟁여놓고 마신다.
2022년 일본 산토리의 조사에 따르면 무알코올 음료 시장 규모는 10년 전보다 약 1.4배 확대되었다. 2024년에는 10년 전보다 약 1.6배 규모이다. 2026년에는 더 확대될 전망이라고 한다.
뉴욕에서는 칵테일에서 알코올을 뺀 '목테일(Mock-up+Cocktail)'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소버 바(Sober Bar)'가 늘고 있다고 한다. 술 없이도 분위기를 즐기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술자리를 즐기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글로벌 축제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태국은 2024년 송끄란 축제에서 무알코올 구역을 지정했고, 독일 옥토버페스트조차 무알코올 맥주 전용 공간을 조성했다.
일본에서는 술을 멀리하는 젊은 층을 뜻하는 '시라후(シラフ)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라떼(2010년부터 2020년)도 이미 일본의 90년대생 밑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술맛이 많이 나지 않는 깔루아 밀크나 카시스 오렌지, 그나마 맥주나 하이볼을 마셨다. 사케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취하기보다 분위기와 맛을 즐기려는 경향 덕분에 오히려 사케는 더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사케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에 위스키에 질린 소버 큐리어스들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모임의 흥행 여부에는 플랫폼의 노출이나 시즌별 이슈 등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소버 큐리어스'라는 거대한 흐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긴 하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사케 모임을 운영하면서 누적 2,000명 이상의 MZ를 만나고 내가 느낀 것은,
"글쎄."
사케와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모임에 찾아오는 20~40대는 '소버 큐리어스'와 상관없이 늘어났다. 단지 무지성으로 소주와 맥주를 간에 들이붓는 문화를 거부하는 MZ가 많아졌을 뿐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냥 소주가 비싸져서 다른 선택지가 많아졌...읍읍
'취기'라는 결과보다 '음미'라는 과정을 중시하는 세대의 변화는 사케라는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 오히려 이건 기회가 아닐까?
물론 이 트렌드가 '디지털 노마드'처럼 반짝 떴다가 사라질 현상일지 아직 알 수 없다. 사케 오타쿠로서 이 변화가 주류 문화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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