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 입문은 실패로 시작된다

by sakerica
“사케는 맛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춘다.



사케는 맛없다

처음 사케를 마신 건 2010년, 만 19살, 교토에서, 쌀쌀한 날씨에 들어간 이자카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오뎅에 곁들인 따뜻한 사케였다. 그 특유의 분위기로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사케를 마셨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사케에 대해 맛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0년, 한국에 귀국하고 처음 마신 사케는 북극곰의 눈물이었다.

소주보다 부드럽고 라벨이 예뻐서 좋았다.


이후 대차게 실패한 사케는 2021년에 마신 확기냥막기냥이라는 팩사케였다.

고양이가 있어 자주 갔던 고래맥주창고에서 상품명이 눈에 띄어서 샀는데, 데워서 마셔도 맛이 막기냥이었고 다음 날에 머리가 확기냥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사케는 맛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춘다.



사케 입문은 실패로 시작된다

- 비싸다 vs 싸다
- (내 입에) 맛있다 vs 맛없다

1. 비싸고 맛있는 것 = 성공

2. 싸고 맛있는 것 = 대성공

3. 싸고 맛없는 것 = 실패

4. 비싸고 맛없는 것 = 대실패


심플하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네 가지로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업장이나 바틀샵, 마트 등에서 저렴하게 실 수 있는 사케들은 대개 술 자체의 향미보다는 음식의 맛을 보조하는 역할인 경우가 많다.


사케 애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좋은 술’은 생산량이 적어 구하기 어렵거나,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사케 입문은 만 19살부터 가능하고 대부분 싸고 맛없는 실패로 시작된다.



사케 입문에 필요한 것

기초 지식 + 경험 + 꺾이지 않는 마음

다른 주종들이 그러하듯, 사케도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하기초 지식이 있어야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서 유의미해진다. 한국에 수입되는 사케는 병 뒤에 한국어로 번역된 라벨이 붙어있는데, 기초 지식만 있어도 라벨의 텍스트 정보로 향과 맛을 유추하고 내 입에 맞는 걸 고를 수 있다.


기초지식과 경험을 쌓는데에는 시음회만한 것이 없다.

사케를 수입하는 회사들이 여는 것과 개인이 여는 것이 있는데, 수입사 주최는 '시음회', 개인은 대체로 '사케벙'이라고 부른다.

나는 '사케모임'이나 '소셜링'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용하는 플랫폼이 모임을 소셜링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메인 콘텐츠 3시간(케 기초지식 + 마셔볼 사케에 대한 상세 지식 + 30ml 시음 8~12가지) + 자유 교류 2시간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최대 23명의 게스트와 나를 포함한 2명의 호스트로 진행한다.

사케벙은 이에 비해 소규모로 캐주얼하게 진행되며 인당 마실 수 있는 양이 많지만 기초 지식은 따로 알려주지 않고, 시음회는 대부분 참가비가 저렴한 대신 참가자들끼리의 교류가 없다.


사케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 뒤에도 실패를 한다.

같은 술이어도 몸과 정신의 컨디션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지고, 유통이나 보존방법 또는 음용시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맛 변질되서 차라리 버리는 게 나을 때가 있기도 했다.


그러니 입문자의 실패는 필연적이다.

내 입에 맞는 사케를 만날 때까지 마음이 꺾이지 않기를.



어떤 사케로 입문하면 좋을까

상품명에 ‘긴죠’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사케는 대체로 향과 맛이 뛰어나 술만 단독으로 즐기기에도 충분하다. 그래서 입문에 실패할 확률이 비교적 낮다.


대표적인 예가 닷사이다. 닷사이는 모든 라인업을 ‘준마이다이긴죠’로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양조장은 야마구치현에 있는 ‘아사히주조(旭酒造)’인데, 쿠보타를 만드는 니가타현의 ‘아사히주조(朝日酒造)’와 같은 발음을 가진 이름이라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두 곳에 더해 아사히맥주를 만드는 아사히(アサヒビール)까지 같은 그룹 회사라고 생각했으니,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닷사이를 만드는 아사히주조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 6월 사명을 ‘주식회사 닷사이’로 변경했다.


닷사이는 사계절 내내 안정된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시마 과장 시리즈》로 유명한 국민 만화가 히로카네 켄시가 만화로 그려낼 정도로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사이는 일본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영화제와 칸 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 행사의 공식 주류로 선정되며 셀럽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는 술이다.

따라서 닷사이로 사케에 입문하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닷사이가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사케 애호가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가격’과 ‘대량생산’을 이야기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다양한 사케들이 눈에 들어오고, 손으로 빚는 전통과 희소성에 열광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닷사이의 '품질'과 '기술력'은 모두가 인정하더라.


현미의 영양 성분인 단백질과 지방은 술을 만들 때 오히려 잡미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모든 사케는 정미된 쌀로 만들어진다.

닷사이는 사케용으로 개발된 주조미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야마다니시키’만을 사용하는데, 이 쌀은 일반 식용 쌀보다 6배 이상 비싼 원료다. 이 비싼 원료를 절반 이상 깎는다는 것이 닷사이의 특징 중 하나이다.

'닷사이 23'처럼 상품명에 붙는 숫자는 알코올도수나 숙성기간이 아니라 도정하고 남은 쌀의 비율이다. 그 비율을 '정미보합' 또는 '정미율'이라고 한다. 쌀 한톨당 77%를 깎아내면 '닷사이 23'처럼 화려한 과실향, 투명한 단맛, 도자기처럼 우아한 여운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주조미의 품종마다 다르겠지만 100%에서 23%까지 깎는 데에는 약 120시간이 필요하다.

사케의 가격이 비싸지는 이유의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닷사이의 도전〉에 나와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사케는 10,000개가 넘는 브랜드가 있고 원료와 제법에 따라 향과 맛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그래서 사케를 계속 마시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런 순간이 온다.


“어? 맛있는데?”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실패의 긍정적인 측면은 (싫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사케 입문의 실패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이유다.


삶도 사람도 사케도 비슷하다.

시옷으로 시작한다는 것... 이 아니라,

실패가 있다는 것.

하지만 실패로 끝이 아니라는 것.


실패로 멈추지 말자.

그 실패가 나머지 다양성을 대표하게 두지 말자.


호기심을 가지고 다시 시도하자.

“괜찮은데?”라는 순간이 분명 올 테니까.



인스타그램 @sak_erica | 가벼운 사케 기록(스토리) 및 양조장 투어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세요.

유튜브 @sakerica | 롱폼으로만 풀 수 있는 사케 이야기와 브이로그를 올립니다.

문토 @사케리카 | 초대 코드 : MWTWIK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사케를 시음하고 알아가며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O!SAKE클럽'을 운영합니다. 클럽에 가입하면 저와 멤버들의 사케모임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원이 300명이기 때문에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제게 DM을 보내주세요. 활동하지 않는 분을 정리하고 신청을 받습니다. 가입조건은, 귀엽게 취할 것. (취해도 무해할 것)

비즈니스 협업 문의 | official@med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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