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니혼슈’는 ‘사케’가 되었을까?

by sakerica
일반적으로 '오(お)'를 붙여서 '오사케(お酒)'라고 부르며 알코올음료 전반을 포괄하는 일반 명사



사케는 틀린 표현이다?

일본도 한자 문화권이기에 훈독과 음독이 있다.

- 술(훈독) : 사케(さけ)
- 주(음독) : 슈(しゅ)

일본에서 '사케(酒)'는 보통 단어를 꾸며주는 '오(お)'를 붙여 '오사케(お酒)'라고 부르며, 알코올음료 전반을 포괄하는 일반 명사다. 따라서 맥주도 사케, 소주도 사케, 위스키도 사케, 와인도 사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쌀로 빚은 일본의 술'은 '니혼슈(日本酒)' 또는 '세이슈(清酒)'라고 부른다.


한국에 귀국하고 처음 마신 사케에서 느꼈던 어색함은 맛 때문이 아니라, '사케'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아이코
"私、酒好きだよ"
− (_______)
유우키
"돈나 사케? (どんな酒?)"
− 어떤 술?
타로우
"욧포도 오사케가 스키난다네 (よっぽどお酒が好きなんだね)"
−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철수
"와타시모 스키! 닷사이모 논다 코토 아루노? (私も好き!獺祭も飲んだことあるの?)"
− 나도 좋아해! 닷사이도 마신 적 있어?


여기에서 유우키와 타로우, 철수는 아이코의 말을 각자 다르게 해석했다.

아이코는 "술이 좋아" / "애주가야" 둘 중 하나의 의미로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철수만 '사케'를 '니혼슈'로 이해하고 한국에서 유명한 브랜드인 '닷사이'를 떠올렸다.

- 사케 스키다 (酒 好きだ) : 술을 좋아한다
- 사케즈키 다 (酒好き だ) : 술을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거나, 일본에서 살다가 온 사람은 '니혼슈'를 '사케'라고 부르는 것을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사케는 틀린 표현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사케'가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케모임에서 가능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케'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어째서 전 세계 사람들이 '니혼슈'를 '사케'라고 부르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니혼슈'와 '사케'

일본 밖에서 '니혼슈'를 '사케'라고 부르게 된 배경에는 뚜렷한 유래 없이 전부 카더라*만 있다.

*카더라 : 정확한 근거 없이 "~하더라"는 식의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억측이나 불확실한 소문


가장 설득력이 있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1868년부터 1912년 사이, 메이지 시대에 일본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일본에 들어온 서양인들이 마시던 술에 대해 묻자, 영어가 서툰 일본인들이 "This is 'SAKE'"라고 답서 '쌀로 빚은 일본의 술' '사케'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한자 문화권에서의 '사케'와 영어 문화권에서의 '사케'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에 퍼진 '사케'는 한자 문화권의 '술 주(酒)'가 아니라, 서양 문화권에서 인식하는 'SAKE'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2015년, 일본의 국세청은 '니혼슈'의 지리적 표시(GI)를 '일본'으로 지정했다. '샴페인'이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인 것처럼, '니혼슈'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일본의 원료로 빚은 청주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되었다. 이 결정은 '니혼슈'라는 명칭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였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니혼슈'보다 '사케'가 더 대중적인 명칭으로 자리를 잡은 뒤였다.


실제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SAKE'의 정의를 "a Japanese alcoholic drink made from fermented rice"라고 표시하지만 'NIHONSHU'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양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해 "'니혼슈'라는 정식 명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정통파와 "'SAKE'로 이미 전 세계에 통하고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라는 현실파로 나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서로 대립하는 무리에 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한쪽에 붙는 것이 처세상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아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을 선택하는 바보다. 정통파와 현실파에 대해서도 내 의견은 역시나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NIHONSHU'보다 'SAKE'가 글자 수가 적고 훨씬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현실파에 가깝지만, 정통파의 의견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냈다.


"이미 굳어진 'SAKE'를 계속 사용하되, 일본에서는 '니혼슈'가 정식 명칭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되잖아?"




'청주'와 '정종'

이제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내가 가능한 조심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인 역사적 배경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어르신들은 '니혼슈'도 '사케'도 아닌, '정종(正宗)'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제사나 차례에서 '정종'을 찾는 모습을 보면, 이 표현이 '청주'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처럼 굳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종'은 일제강점기(1910-1945년)의 잔재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다들 알다시피,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일본은 1907년에 주세령을, 1916년에는 자가양조금지법을 시행하면서 조선에서 집집마다 내려오던 가양주(집에서 빚는 전통주) 문화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이미 1899년에 자국민에게도 주세령으로 도부로쿠(집에서 빚는 탁주)를 금지한 일본제국주의적 스레기들이다. 이 주세령과 자가양조금지법으로 인해 한국의 전통주 문화는 심한 피해를 입었 사람들은 일본의 술을 마셔야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마사무네'라는 브랜드다. 이 '마사무네'의 한자가 '정종(正宗)'이다. '사쿠라마사무네(桜正宗)', '키쿠마사무네(菊正宗)' 등, 현재 일본에는 '마사무네'라는 이름이 붙은 상표만 149개에 이른다. 일본 효고현의 사쿠라마사무네 주조에서 불교 경전인 '임제정종(臨済正宗)'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 메이지 시대에 상표등록제도가 생기면서 '마사무네'를 상표로 등록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많은 곳에서 '마사무네'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원조를 포함한 그 누구도 상표로서 등록하지 못했다는 아이러니한 사연도 있다.


'마사무네'의 한자를 음독으로 읽으면 '세이슈우'다. 청주의 일본어 발음인 '세이슈'와 비슷하다.

- 세이슈 (清酒) : 청주
- 세이슈우 (正宗) : 정종, 마사무네


이 '마사무네'라는 이름이 한국에서 청주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굳어진 데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사케를 유통하던 회사들의 역할이 크다. 그들이 '마사무네'를 '정종'으로 표기해서 유통을 성공시켰고,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정종'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2년, 스웨덴에서 살 때 약국에서 "Hi, Could I get some 'Band-Aid's?(안녕하세요, 밴드에이드 좀 살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가 의사소통의 오류를 겪었던 적이 있다. 투명 테이프를 구매하려고 문방구에 갔을 때 '스카치테이프(Scotch tape)'라고 하니까 직원이 알아듣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마치 '밴드에이드'나 '스카치테이프'처럼 대중은 '정종'을 청주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인식하 있다.


'마사무네'라는 술이나 그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이용된 브랜드일 뿐이니까.


다만, 조상님들 앞에서 '정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으니,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마사무네'와 '다테 마사무네'

토호쿠 지역의 미야기현에 간다면 '다테 마사무네'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마사무네'와 '다테 마사무네'의 한글 표기가 같아 헷갈릴 수 있는데, 한자 하나 차이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 正宗 : 정종, 마사무네, 불교의 '임제정종(臨済正宗)'에서 유래
- 政宗 : 토호쿠 지역을 통합한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테 마사무네의 이름


'다테 마사무네'는 미식과 패션을 사랑했고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로, 미야기현에서는 '다테'라는 이름이 지역 문화와 관광의 상징으로 통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전쟁이 사라지자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통제하고 개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일으킨 임진왜란(1592-1598년)에서 '다테 마사무네'도 조선 침략의 명령을 받았다.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진 힘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세의 일환으로 조선 땅을 밟았지만, 침략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훗날, 조선 침략에 참전하지 않은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정권과 가문 전체를 봉멸시키는데, 이때 '다테 마사무네'는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고 알려진다.




마치며

일본어는 이렇게 한자에 따라 발음도 의미도 달라진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는 힘들고 어렵지만, 어렵기 때문에 더 재미있기도 하다.


역사는 늘 조심스러운 주제다. 부족한 지식이 드러날까 두렵고,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예민해지기도 한다. 좋지 않은 댓글이 달릴까 두렵다. 그러나 사케에 관심을 가지고 콘텐츠로 다루는 이상,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따라서 계속 공부해야하는 영역이다.


역사는 개인을 국적, 세대, 성별, 이념으로 묶어 공격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역사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과거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나침반이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대혐오의 시대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게 하여, 편향된 사고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생각을 마주하는 것은 이해와 존중을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움과 혐오가 아닌 이해와 존중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케 한 잔이 거창한 세계 평화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잔을 부딪히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모태 오타쿠로서 가장 잘 아는 나라인 '일본', 그리고 '술'을 이용해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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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토 @사케리카 | 초대 코드 : MWTWIK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사케를 시음하고 알아가며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O!SAKE클럽'을 운영합니다. 클럽에 가입하면 저와 멤버들의 사케모임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원이 300명이기 때문에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제게 DM을 보내주세요. 활동하지 않는 분을 정리하고 신청을 받습니다. 가입조건은, 귀엽게 취할 것. (취해도 무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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