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지역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 속 끝없이 펼쳐진 아키타 설원이 기억난다. 그 시린 풍경 속에서 따스한 등불을 켠 초가집 한 채를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술, '눈 덮인 초가집'이라는 뜻의 유키노보샤(雪の茅舎)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이 술은 아키타의 깊은 눈 아래서 정성껏 빚어낸 기다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키노보샤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인위적이지 않음에 있다. 물을 섞지 않고(무가수), 거르지 않으며(무여과), 심지어 술독에서 봉을 젓지도 않는(카이이레) 고집스러운 자연주의 양조 방식은 쌀이 가진 본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병에 옮겨놓았다.
잔을 코끝에 가져가면 사과나 백포도를 한 입 베어 문 듯 상쾌한 향이 번진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섬세한 산미와 잡미 없는 깨끗함은 마치 갓 내린 눈 위를 걷는 것처럼 경쾌하고 세련된 기분을 준다. 55%까지 정성스레 깎아낸 쌀의 마음이 부드럽고 촉촉한 단맛으로 피어나 니혼슈 초보자에게는 첫사랑이 되고 애주가들에게는 든든한 휴식처가 되어준다.
브랜드: 유키노보샤(雪の茅舎) 준마이긴죠
특징: 정미율 55%, 도수 15도
가격대: 720ml 1,815엔 / 1.8ℓ 3,300엔
유키노보샤 준마이긴죠는 특유의 청량함과 깨끗한 뒷맛 덕분에 일식 전반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생선회 (도미나 광어 같은 담백한 회는 술의 산미를 방해하지 않고 쌀의 감칠맛을 돋움)
채소 튀김 (갓 튀겨낸 채소의 고소함과 유키노보샤의 상쾌한 끝 맛이 만나면 입안이 개운해짐)
석화와 레몬 (사과 향이 감도는 술의 특성상 바다 향 가득한 굴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최고 궁합)
아키타 설원 속에서 묵묵히 등불을 밝히는 초가집처럼 유키노보샤는 기교 대신 자연 순리에 맞춰 우리 식탁을 밝혀주기 위해 온 것 같다. 이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눈 덮인 고요한 숲길을 걷는 위로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바쁜 하루의 끝, 담백한 회 한 접시에 설원을 품은 유키노보샤 한 잔을 더해보면 어떨까?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리지 않더라도 차갑게 칠링 된 잔 속에는 이미 아키타의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 거다. @알쓸사잡 (알면 쓸데없는 사케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