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독립 후 내 한 몸 누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 왔습니다.
14년만에 돌아온 부모님의 전원주택은
너무나 안락하네요.
어릴 때에는 그토록 싫어하던
농사짓는 시골 생활도
지금은 평화롭고 너무나 좋습니다.
언제까지 집에서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맛있는 시골밥상을 기록합니다.
시골 여름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반찬은 바로 상추다.
상추를 키워본 사람만 그 이유를 안다.
상추가 정말 끊임없이 자란다.
상추를 뜯어 점심을 먹고 돌아보면
저녁에 먹을 상추가 보인다.
집 앞 마당에 한 줄 심은 상추가 무한 증식을
시작하면,
우리집을 지나가는 동네사람에게 하는
인사가 ‘상추 뜯어가요’로 바뀐다.
한 집의 상추로 온 동네가 먹는 셈이다.
상추는 늦봄부터 초 여름까지 제일 맛있다.
어린 상추는 억세지 않고 잎이 야들야들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난다.
어떤 음식에나 잘 어울려서,
뭐든 싸 먹기만 하면 된다.
두부를 넣고 만든 강된장에 한입 크게 싸 먹고,
엄마가 구워 준 삼치 넣고,
집 반찬 넣고 무한대로 들어간다.
그래도 제일 잘 어울리는 건 바로 고기.
삼겹살, 목살, 그리고 훈제오리랑 먹으면
항상 과식하곤 한다.
초 여름 상추는 부드러워 두 장 이상씩 싸 먹으면,
아삭한 식감과 맛이 더해진다.
사실 올해 상추 시즌에 먹은 상추가
내 평생 먹은 상추보다 많은 것 같다.
하루에 두 번씩 상추를 뜯는데, 이것도 요령이 있다.
상추를 아래 대부터 뜯어 주고,
솎아줘야 상추의 무한궤도가 완성된다.
맛있어 보이는 놈들만 골라 뜯다가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다.
역시 농사는 어렵다. 요령 부리면 안된다.
신나게 상추를 먹던 어느 날, 수확을 하는데
상추 잎에 구멍이 뿅뿅 나 있다. 달팽이님이 오셨다.
그래 우리 신나게 먹었으니, 좀 드시는 것이 좋지.
다만 우리가 상추를 먹을 때에는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고,
달팽이가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주로 상추 뒤쪽에 잘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집 막내는 상추를 뒤집어서
쌈을 싸 먹곤 한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으로 향하면서,
상추의 맛이 살짝 변한다.
똑같은 땅에서 같은 조건으로 자라는데,
햇빛을 많이 받았는지 억세지는 시기가 온다.
그럼 신나게 먹던 상추 밭을 갈아엎고,
또 다른 상추를 심는다.
올 여름, 나는 과연 몇 장의 상추를 먹을 것인가?
우리가 먹을 재료를 사는게 아니라 뜯어 오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고, 몸은 더 좋아하는 일이다.
상추는 아주 적게 심어도 정말 많이 먹을 수 있으니,
마당 없는 집에서도 올 여름 상추를
심어 먹어봤으면 좋겠다.
아니면 우리집 근처로 놀러 오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