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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Dec 12. 2024

이유불문, 친구사이

먹기 위한 산책은 애교

23년 지기 친구 집, 깜짝 선물은 필수다.

이유는 즉, 23년 지기지만 1년에 한두 번 겨우 본다.

아주 가까이 살면서도 말이다.

물론 친구가 워킹맘이기도 하고.

1년에 몇 번 보지 않기 때문에 만나기로 하는 날엔 먹거리나 화장품 등 챙겨간다.

이번엔 12월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는 코앞이니 식탁 위에 툭, 얹어놓으면 나름 애교, 귀요미 녀석인 냄비 받침대를 선물로 내놓았다.

웬걸, 장바구니에 넣어놨던 아이템이라며 좋아해 주는 친구, 다행이다.

자주 못 보니까 한 번쯤 약속을 잡으면 늘 겨울 또는 봄이다.

이때는 역시나 먹자판, 놀자판이다.






앉자마자 시작된 커피와 과일, 접시에 종류별로 담긴 떡이 반긴다.

앉아서 수다만 떨 텐데 아침부터 너무 과하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꽃을 피우며 먹고 말하면서 칼로리를 얻고 태우는 게 가능했다.

평소 같으면 소화가 안 된다며 움직이려 했을 테지만 수다가 역시 강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어쨌든 접시를 비우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해물찜 먹을래, 곱도리탕 먹을래?"

"우리 떡이랑 과일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점심 먹어? 그리고 점심으로 먹기엔 좀 과한데?"

"됐고 곱도리탕. 내가 당겨."

역시 답은 정해져 있던 친구다.






"뭔가 허전한데?"

친구는 냉장고에서 고기와 야채를 꺼내 급하게 더 넣고 바글바글 끓이며 먹는 중에 논알코올 맥주를 꺼낸다. 분위기라도 느끼고 싶어서 시원하게 한 잔 했다.

오늘이 금요일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맛있게 먹는 중에 생각해 보니 곱도리탕에 곱창이 없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입을 꾹 닫았다.

친구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순식간에 만삭 임산부 못지않게 배가 불러온 친구가 애교스럽게 말한다.

"소화시킬 겸 산책하자" 

산책? 평소 잘 걷지 않으려 하는 친구의 뜻밖의 제안이다.

나에겐 아주 반가운 소리, 좋다고 따라나선다.

걷는 중에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생각보다 춥지 않은, 따듯한 날씨를 만끽하며 산책하다 보니 순대차가 보인다.

망. 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23년 지기가 그냥 친구가 아니다.

서로의 취향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

당연하게 순대차로 걷는 우리 둘이다.

그래, 맞다.

오늘은 먹자판, 놀자판이다.

후다닥, 산책은 끝, 역시 애교 수준이었다.

절대, 절대, 절대로 순대 사러 나간 건 아니다.

집으로 향해서 간단히 시작된 젓가락질이 결국 깨끗하게, 가볍게 비워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어느새 아들 녀석의 하교 시간이 다가온다.

주섬주섬 외투를 입고 나가려는 찰나, 친구가 선물로 건네준 미스트를 신나서 풀어보고는 칙칙, 뿌려대고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웃어댔다.

어이가 없어서.

우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5시간 동안 끼를 먹었던 기억밖에 없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입으로 든든히 즐긴 것 같다.

겨울이 지나기 전, 오늘 못 본 또 다른 23년 지기 친구와 함께 조만간 다시 모이기로 했다.

먹자판이 될 것이 분명하고 놀자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엔 이틀 굶고 가야겠다.

셋이 모이면 산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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