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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Dec 14. 2024

연말, 초대

다음엔 배달 찬스를..

어제였다.

띵동, 쌀 10kg을 들고 우리 집 현관 밖에 나타난 언니, 최근에 우정 팔찌라며 뜬금없이 선물을 내밀던 앞 동에 사는 언니에게 밥을 먹자고 제안했더니 묵직한 쌀을 들고 왔다.

쌀을 받은 건 처음이다.

술은 못 하지만 저녁 먹으면서 간단히 한 잔 하기로 했다.

처음엔 배달을 시키려 했다가 차라리 아파트 알뜰 시장이 열리는 날 포장해 와서 먹으려 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접 하자!

연말이고 초대는 했는데 배달은 좀 아닌 것 같고, 편한 사이도 불편한 사이도 아닌 그 어중간한 사이였기에 막상 초대는 했지만 애매했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서로 편한 날인 금요일로 정했고 집밥으로 하되, 간단히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메뉴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장금이가 아닌지라 종일 부담이 되었다.

며칠 전 맛있게 먹었던 잡채를 넉넉하게 다시 했으니 밥상에 슬쩍 올리고, 추워진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필요하니 홍합탕, 호불호 없을 달콤하고 매콤한 닭꼬치를 내어 놓았다.






야리야리한 언니의 몸, 입이 짧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맛있게만 먹어준다면야, 집으로 돌아갈 때 슬쩍 싸주려고 많이 했는데, 앉은자리에서 몇 번이나 리필이 됐다.

맛이 있으니 다행이고, 많이 했으니 다행이었다.

본격적인 수다가 오고 간다.

한 잔 하며 먹기 시작한 한상 차림이 사라지고 다시 채워지고, 반복이 되면서 서로가 만족하는 식사 자리가 되었다.

아들 녀석도 이모와 함께 한 자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 또 오라고 애교를 부린다.

한창 먹고 있을 때였다.

신랑이 퇴근길에 술과 안주를 더 사 왔다.

센스 있다고 칭찬 투척, 함께 했다.

처음 가졌던 자리가 점점 더 편해지고, 신랑과 언니도 말이 잘 통했다.

오며 가며 잠깐의 커피 한 잔을 통해 수다즐겼던 동네 언니, 밥 먹는 시간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우니 피곤함도 없었다.






나는 사실 커피는 언제든, 누구든 좋다.

하지만 밥은 좀 다르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

부담이 되는 게 맞다고 해야겠지?

아침형인 내가 저녁에 나갈 일도 사실 없다.

무조건 저녁엔 집에 있어야 쉬는 것 같은 나, 아이가 있으니 나가서 먹는 것도 결국 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했지만 누군가의 방문은 늘 어색하고, 집 분위기와 공기까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다행히도 어제는 초대한 보람은 있었다.

연말이라고 핑계를 대며 만든 자리지만 초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부담은 됐었고, 간단히 차린 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긴장도 잔뜩 됐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말이라도 맛있다며 잘 차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안심은 되지만 사실 두 번은 못하겠다.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음식을 하는 건 둘째 치고, 메뉴를 고민하는 일이 나에겐 더 어려웠기에 다음엔 배달시켜서 더 편하게 먹기로 하며 또 다음을 기약했다.






밥 한 끼 먹는 건데, 왜 긴장이 잔뜩 되는지 모르겠다.

연말이라 즐거운 날들이 계속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를 즐기는 것도 행복하지만 아직도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라는 게 참 어렵고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먼저 선뜻 잘 지내보자고 우정 팔찌를 건넨 언니의 선한 마음이 일으킨 저녁 식사였다.

연말이라고, 어제를 계기로 함께 한 저녁 식사언니와 나의 사이를  돈독하게 해 주었고, 다음은 더 수월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품을 수 있었다.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일상만 즐기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겠지만, 가끔은 새로운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일상을 만드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더구나 다음은 부담 없이 배달시키기로 했다는 것이 제일 만족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에도 나의 노력은 통했다.

그리고 다음이라는 기회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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