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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Dec 15. 2024

아들아, 엄마 아빠 쉬고 싶어.

가정의 평화, 행복 그리고..

주말, 1박 2일 여행을 왔다.

쌀쌀한 날씨지만 해는 제법 따듯해서 산책하기에도, 간단한 운동을 즐기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오랜만에 가성비 좋은 숙소라며, 아들 녀석도 나도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숙소 이용객들 역시 정원을 산책하며 모두 만족감을 드러낸 순간을 보고 들으니 "참 잘 왔다."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 만족스러운 마음, 차갑지만 맑은 공기 마시기도 바쁘게 이제부터는 아들의 세상이다.

센스 게 여러 종의 운동 기구들과 공, 배드민턴 채 등 많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배드민턴도 해야 하고 캐치볼도 해야 하고, 자전거도 타야 하고 술래잡기도 해야 하고, 숨바꼭질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다 해야 한단다.

8살 인생 최고의 기회이자 순간인 셈이다.

행복해하는 아들 녀석을 보니 엄마 아빠도 신나긴 한다.

매점을 가보자는 유혹에도 절대 흔들림이 없는 아들 녀석, 그래, 아들 너만 행복하다면야.






겨우 하나씩 다 해보니 그새 땀범벅이다.

어려서 그런가, 열이 많은 녀석을 보니 손발이 찬 엄마는 아들이 참 부럽다.

정원에서만 한 시간 남짓 놀다가 겨우 매점으로 향했더니 시원한 콜라를 원하는 아들 녀석, 분명 엄마인 나도 움직였지만 그래도 추운데, 잡고 있기도 힘든 콜라캔을 들고 마시겠단다.

이온음료로 시선을 돌려보려 하지만 끝까지 콜라란다.

누가 말려, 고집불통 아들 녀석이 원하는 콜라 한 캔 못 사주나, 계산하고 나왔다.

보기만 해도 오들오들 떨게 만드는 냉장고 안에 있던 캔콜라의 위력을 느껴보니 차마 밖에서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둘러 숙소 안으로 들어와 콜라 캔을 따서 주니 벌컥벌컥 마시고는 시원하게 트림을 하는 녀석, 땀 흘리며 운동하고 마시는 콜라 한 캔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는 것 같다.

아들 녀석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매 순간 느끼고 있으니 참 많이도 컸다.






운동을 했으니 배가 고프지, 숨 돌릴 틈 없이 곧바로 밥 먹자는 아들이다.

저녁도 안 됐는데 배고프다는 아들, 칼국수가 먹고 싶단다.

바닷가 근처라 아무 식당이나 찾아가도 칼국수가 있으니 안심하고, 땀 흘린 아들 녀석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꽁꽁 싸매고 식당으로 향했다.

가성비 숙소를 만족한 지도 얼마 못 가 칼국수의 사악한 가격을 보니 고민이 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참 씁쓸하다.

밖에서 한 끼 먹는 것이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인가, 2인분에 5만 원 돈 되는 칼국수와 2만 원이 넘는 해물파전을 시키고 보니 은근히 아까운 마음이, 신난 아들 녀석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나서 들뜬 아들 녀석과는 다르게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마음, 엄마 아빠의 가계부 상황이 때론 버겁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아줄까 싶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오기 무섭게 놀아달라는 아들 녀석이다.

조금만 먹일걸, 후회되는 순간이다.

숙소 사장님의 센스로 얻은 보드게임을 하며 내기를 한다.

단 한 판으로 아빠의 승, 바로 씻자는 제안을 하며 잠시 쉴 틈이 생겼다.

아빠와 아들 녀석이 씻는 동안 보드게임은 안 보이는 곳으로 잽싸게 숨겨놓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냉장고에 준비해 온 음료와 물, 먹거리를 잔뜩 넣어놓고 나니 개운하게 씻은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 녀석, 오늘이 참 행복하단다.

소소한 행복을 순수하게 즐기는 아들 녀석을 보며 흐뭇, 바통 터치라도 한 듯 엄마가 씻으러 들어간다.

씻고 나와보니 숨겨놨던 보드게임을 아빠와 함께 하고 있는 녀석, 안쓰러워 보이는 신랑의 모습에 후다닥 정리를 들어가는 엄마다.

날이 갈수록 체력이 좋은 아들 녀석, 곧 겨울 방학이다.

무섭다.

보드게임을 정리하기 무섭게 숨바꼭질을 하자는 녀석, 언제 쉬나 싶지만 그래, 숨어라.

꼭꼭 숨어라.

이젠 제법 커서 숨어도 보이는 녀석이지만, 기를 쓰고 숨는 녀석을 보니 기똥차다.






엄마들이, 아빠들이 왜 그렇게 핸드폰을 쥐어주는지 충분히 알겠다.

젊어서는 몰랐고, 아이 엄마여서 이해가 안 갔던 부분들이 아이가 커가면서 제대로 느끼고 와닿는 순간들, 이해 안 가던 것들이 모두 다 이해가 되는 순간, 지금이 딱 그 순간이다.

겪어봐야 아는 것들, 직접 겪는 순간들이 많아지며 꼭 아이와의 시간만이 아니라는 것도 눈치로 알아가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면서 인생이라는 큰 틀에, 하루하루 일부분으로 살아가는 요즘, 어릴 땐 몰랐던 감정, 젊어서는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들,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모든 일,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나이를 먹을수록 느낀다.

겪어보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 입을 꾹 닫아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지 않았던 순간들, 이제는 알 것 같다.

참, 사는 게 만만치 않다.

부모로 살면서, 어른으로 살면서 숨 쉴 틈 하나씩은 꼭 마련하고 살아야겠다.

찾아야겠다.

또 하나의 숙제이자 숨 쉴 틈, 숨 쉴 구멍, 오로지 행복을 위해.

이렇게 또 방법을 찾아내보려 머리를 굴려본다.

그리고 덤으로 얼마 안 남은 2025년을 위해, 한 살 꽁으로 먹지 않겠다는 다짐까지도 해본다.

어느새 1박은 끝났다.

숙소를 비워줘야 하기에 마지막 아들 녀석의 아쉬움은 솔방울 폭탄 놀이로 신나게 마무리, 엄마 아빠의 기초 대사량이 저질 체력으로 답이라도 해준 듯, 다 소진된 것 같다.

이제 가자, 엄마 아빠의 커피 맛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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