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부한 ‘가정환경조사서’에는 ‘자가’,‘전세’,‘월세’ 중 하나에 동그라미를 하도록 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게 뭔지 몰라 엄마에게 물어보고 동그라미를 치곤 했다. 어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배부한 후 수거하는 수고를 덜고자 교실에서 손들게 하는 분도 있었다.
“자, 자기 집이 자가인 사람? 즉 너희가 사는 집주인이 너희 부모님인 거지. 자가인 사람 손 들어봐. 그다음 전세인 사람? 이건 너희가 사는 집주인은 따로 있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인격이나 사생활 같은 건 없었다. 저학년 때는 물정 모르고 해맑게 손들던 아이들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전세’나 ‘월세’에는 머뭇머뭇하며 손을 들었다. 내가 사는 집에 주인이 따로 있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작은 평형이나마 우리 집인 걸 다행으로 여겼고 ‘자가’에 손드는 아이들 틈에 껴서 안심했다.
하지만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차이가 안 나는 지방에 오랫동안 살면서 어린 시절 새겨진 전세살이의 그늘진 이미지가 많이 없어졌다. 그저 필요에 의해 누군가는 잠시 전세로 살고 누군가는 집을 사는 것뿐이었다. 집값이 안정된 동네에 거주하다 보니 집의 자가 여부와 개인의 능력을 딱히 연결해서 생각할 일이 없었다.
신도시에서 처음으로 초대받은 집들이 자리에서 오래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전세’에 망설이며 손들던 아이들 모습. 그 애들과 같이 손들지 않아서 내심 안도했던 순간. 전세란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일이고 이 동네의 도서관, 수영장, 공원 등 쾌적한 모든 공공시설 또한 언제까지 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때가 되면 돌려줘야 될 물건처럼 느껴졌다.
편하게 이용할 수가 없었다. 마냥 설렌 신도시 입성이었는데 그게 반쪽자리 입성이란 걸 자각하게 되니 어린아이처럼 들떴던 마음이 약간은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는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사는 집을 나는 못 산 거고 그만큼 무능한 거라는,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결론을 맺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