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세요! 점심 약속 있으신 거예요?”
조리실 문간에서 주뼛거리고 서 있으려니 회장이라고 인사를 건넨 분이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회원들이 같이 가자고 거든다.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봉사 모임에 참석한 거였다. 별다른 목적 없이 친교만을 위한 동네 모임은 많이 해봤으니, 이번에는 같은 지향을 갖고 실천하는 모임에 들고 싶었다. 새로운 동네에서 시작하는 인연에는 ‘봉사’나 ‘선의’라는 의미도 부여되길 원했다.
여러 소모임 중 하나였던 그곳은 시설에 오는 아이들 간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내 또래의 주부 예닐곱 명이 회원으로 있었는데 다들 타지에서 와서 서로 많이 의지하고 지내는 듯했다. 아이들 간식을 만드느라 조리실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퍽 정다워 보였다. 내게 어디에서 왔는지, 언제 이사 왔는지 물어보며 관심을 표하는 태도도 살갑게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나도 저들처럼 서로 격의 없이 웃고 떠들까?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전학생’이 된 심정이었다. 어떤 사람들일지 조심스러워하는 마음 한편으로 빨리 친해지고 싶은 조바심도 일었다.
“자, 아이들 간식 재료 준비는 끝났습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네요. 그럼 드디어 집들이에 가는 건가요?”
“아유, 집들이까지는 아니고 그냥 간단하게 점심 같이 하자는 거예요.”
사실 좀 서먹한 느낌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집도 오가고 같이 밥도 먹어야 빨리 가까워질 거란 생각에 회원 한 명의 집들이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했다. 둘셋씩 짝지어 가는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간단한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꼼꼼하게 잘 차린 한상이 있었다. 편육 채소 무침, 연어 구이, 구절판, 단호박 죽까지 온갖 요리를 준비한 주인장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며 집이 예쁘다고 다들 인사말을 늘어놓았다.
“집이 내부도 환하고, 전망도 참 좋네.”
“그러게요. 요즘 이 아파트가 엄청 올랐다면서요?”
“맞아. 얼마 전에 000원에 팔렸다잖아.”
“와, 좋겠다. 우리 집은 왜 안 올라.”
“욕심내지 마세요, 그 정도도 많이 오른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혼자 낯설어서 불편한 자리였다. 사람들이 저마다 부동산을 둘러싸고 한 마디씩 하는데 무슨 말을 하며 끼어야 할지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신입’ 회원이긴 하지만 주인장 노고에 감사하며 집에 대한 덕담을 곁들여야 할 것 같아 머릿속에서 문장을 정리 중인데 누군가 말했다.
“신도시다 보니 다들 집값에 민감하죠.”
“맞아요. 분양가니, 프리미엄이니, 매매가니, 전세가니 이런 거 많이들 얘기해요.”
“그렇죠, 신도시 특성 중 또 하나가 전세로 들어오는 사람이 진짜 많다는 거예요. 전셋값이 매매가에 비해 훨씬 싸니까요.”
“그런 신도시 특성 때문에 어려움도 있죠. 계속 전세로 옮겨 다니며 사는 세입자들이 많아요. 회원 중에 세입자들이 많이 섞인 소모임 리더들은 힘들어해요. 세입자들은 어차피 떠날 동네라며 활동을 열심히 안 한 대요.”
봉사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염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리 중이던 문장 같은 건 머릿속에서 흩어져 버리고 행여 누구랑 눈이 마주칠까, 손잡이가 도금된 컵만 노려보고 있었다. 눈 마주치면 전세냐, 자가냐 물어볼 것 같아서. 화제는 아이들 다음 주 간식 메뉴로 옮겨 갔지만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 채 이 중에 나 같은 세입자는 없다는 사실만 곱씹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시무룩한 얼굴로 있으려니 남편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세입자인 게 뭐 어때서? 전세 처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지난번 동네도 처음에는 한참 전세로 살았던 거 잊었어?”
“맞아. 그때 처음에 전세로 몇 년 살았었지. 그런데 그때는 돈이 없어서였다기보다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거였잖아.”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살아보고 정하기로 한 거잖아.”
“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니더라고. 그 당시는 전세가나 매매가나 비슷한 동네였는데 여긴 전세가에 비해 매매가가 엄청나게 비싼 동네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동네 여건을 보느라 전세로 들어왔다기보다 너무 비싸서 못 사고 있는 거야.”
남편은 봉사하겠다고 가더니 전세살이 서러움을 늘어놓을 기세로 돌아온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거실로 나가버렸다. 알고 있다. 봉사한다며 나갔다 온 사람이 뜬금없이 자가냐, 전세냐 따지며 공연한 자격지심을 느끼는 게 이상해 보인다는 걸. 이런 잣대로 사람 줄 세우는 건 속물적이고 우스운 계산이라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하니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내가 잠깐 만나고 온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생각은 자꾸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