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맛보는 익명의 즐거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이른 아침, 인근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단지 내 정원을 구경하다가 강변으로 산책을 갔다. 잘 단장된 제방 길에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아직은 작은 수목들이었지만 부풀어 오른 꽃망울은 봄바람이 닿기만 해도 후드득 피어날 것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강변 옆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로를 혼자 걷자니 어쩐지 이 동네에 빨리 정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혼자 산책할 생각을 못 했었다. 여럿이 왁자하게 떠들며 하는 산책은 휴식이 되기보다는 머릿속에 온갖 이야기의 잔상을 남겨 가끔 머리를 무겁게 한다. 예전 동네에선 왜 그리 기를 쓰고 늘 누구와 같이 식사하고 함께 나들이를 가려고 애썼을까? 핸드폰을 뒤져가며 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락했을까? 혼자 걷는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쇼펜하우어도 산책은 혼자 하는 거라고 했다는데 말이다. 다들 무리 지어 다니는 그 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난 동네의 ‘주류’가 아니라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동네 특성상 남편 직장 때문에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들 중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제 나름대로 공부 잘하고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주부가 되니 그들은 자식 교육에 온 정성을 쏟는 게 맡은 바 직분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모의 못다 한 성취를 자식을 통해 이루려 들면 안 된다는 말은 그들 앞에서 그저 직무유기 중인 부모가 쏟아내는 공허한 자기변명이었을 거다.
그 신념이 공고하다는 걸 알기에 ‘오로지 관심사는 자식 성적’인 것을 두고 딱히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자식 교육에 소홀하다고 종종 나무라는 이웃 엄마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정쩡하게 웃고만 있었다.
“00 엄마, 내가 말한 그 교재 구입 안 했어? 왜 안 했어? 그거 중요하다고, 중학교 가기 전까지 꼭 해야 한다고 했잖아.”
“아, 아니, 그게 아이도 썩 흥미를 안 보이고.”
“처음부터 흥미를 보이는 애가 어디 있어? 엄마가 도와줘야지.”
“아, 그런가.”
학교 다닐 때 꽤나 우등생이었다고 자기 자랑을 곧잘 하던 그녀는 엄마표 교육의 선두에서 엄마들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모자라 나 같이 태평한 엄마에게는 훈계도 뒀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표 교육에 소홀한 엄마는 은근히 죄인 취급했다. 속절없이 죄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다른 정체성도 갖기 어려워 난감했던 시간들. 익명의 도시에 와서야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은 낯설고 새로운 여행지에 가서야 자기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에 떠밀리며 살 때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먹고 싶은지, 보고 싶은지 무심히 잊고 지낸다. 그러다 기차든 비행기든 어딘가에 몸을 싣고 전혀 다른 경치 속에 발을 디디면 ‘이곳에선 어디를 가야 즐거울까’, ‘유적지를 갈까, 시내를 갈까’ 같은, 밑바닥에 가라앉아버린 자기 취향과 선호도를 한번 휘저어 떠오르게 한다.
10여 년 익숙한 동네를 떠나오고 나서야 그간 내가 너무 많은 시선을 의식하며 사느라 지쳤다는 걸 실감했다. 이웃과 정이 두터워지는 것과 그들 시선에 얽매여 사는 것이 구분되지 않고 엉켜서 왠지 모르게 매일이 피곤했다. 딱히 그런 신념에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엄마표로 애들 교육도 잘하고 남들 보기에 만능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는 조바심 속에 살았다. 정든 동네를 떠나 아직은 서먹한 도시에 발걸음을 내딛고 보니 한동안 잊고 지낸 ‘나’란 사람이 조금씩 보였다.
아기 발꿈치 같이 보드라운 봄바람이 머리를 쓸어 올린다. 봄이란 계절이 가져다주는 설렘에 더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단행한 이사 덕이었을까. 내 마음도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