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강요하기보다 취향과 관심사란 선물을
시중에 참 많은 유아부터 성인 대상 독서법 책들이 나와 있고, "책 육아"란 말이 나올 만큼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게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완전히 멀어졌던 아이가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까지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저는 관련 전공자면서 학교에서, 사교육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니까 독서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제가 아는 지식과 경험이 당연히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상황에 따라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시면 될 거예요.
아이 어릴 때 저도 꽤나 열성 엄마였습니다. 책 육아를 다룬 많은 육아서를 독파하면서 아이에게 적용해 봤는데 당시 유아였던 아이가 아침마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니 엄마표 독서법이 통했다며, 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지요. 어디 가서 "책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고 자랑도 많이 했고요. 유아에서 학령기 아동으로 클 동안, 제 아이는 물론 아이 친구들까지 엮어서 화려한 독후활동을 많이도 했어요. 그때 제가 조금만 정성을 쏟아 블로그에 그 발자취를 꾸준히 올렸으면 진작에 파워블로거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둘째까지 출산하고 나니 블로그에 수업 내용을 올릴 여유는커녕, 수업 준비도 간신히 할 만큼 매일이 정신없었고, 아이와 진행하는 독후활동과 엄마표 수업이 점점 짐스럽게 다가왔어요.
결정적으로 이렇게 책을 많이 읽히고 눈 돌아갈 만큼 다양한 독후활동을 하면 아이가 학교에 가서 발표도 잘하고, 주변 엄마들이 "어떻게 가르치신 거예요?" 물어본다고 했는데, 아이는 별로 그럴 기미가 안 보였어요. 둘째 태어난 이후 부쩍 위축되고 엄마 사랑이 뺏길까 봐 극도로 불안을 느낀 아이는 그 당시 제 눈에는 사사건건 안 하던 말짓을 하며 저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죠. 지금 돌아보면 당연히 애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였습니다.
그 시절 저의 엄마표 학습은, 아이는 쏙 빠진 채 지나치게 엄마가 주도하는 형식이었고 과정을 즐기기보다는 결과와 보상을 바랐기에 아이에게 은연중에 상처를 주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어요. '책 속 아이는 이렇게 하니까 엄청나게 아웃풋이 나오는데 얘는 왜 안 나오지?' 참 바보 같은 조바심으로 아이를 닦달하기에 이르러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멈췄습니다. 저의 엄마표 학습과 독서교육은 그렇게 저물어갔어요.
이후 중간 이야기는 생략하고 중학교로 건너뛸게요. 엄마표 수업과 독후활동은 중단했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자기 전에 다만 몇 페이지라도 꼭 책을 읽던 아이가 중학교 가서 사춘기가 오니 완전히 달라졌어요. 1년 동안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정말 책을 단 한 장도 안 보더군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잖아요. 책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세상은 너무 재밌지요. 제가 당시에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상으로 독서논술 수업을 했었는데 분명 수업에 억지로 끌려온 것으로 보이는 사춘기 아이 옆에서 이런 부탁을 하는 어머니들이 자주 계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00이는 집에 오면 스마트폰만 쥐고 살아요.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애가 폰 좀 그만 보게 선생님이 잘 설득해 주세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어머니, 제 자식도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랑 집에서 싸우느니 그냥 제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남의 애들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볼게요.'
인테리어 에세이에서 시작된 책 읽기
그렇게 1년을 일부러 애를 안 보고 제 일만 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다만 제 일의 특성상 집에는 늘 책이 많았고 애들이 '엄마는 일도 독서, 취미도 독서'라고 할 만큼 저는 항상 책 보는 엄마였습니다. 스마트폰 세상에 빠져 있던 아이가 우연히 인테리어에 대한 영상을 접하고 관심을 갖더군요. 아이에게 '관심사'가 생기는 건 좋은 신호입니다. 마침 제가 이 책 저 책 보던 중에 인테리어에 관해 쓴 에세이가 눈에 띄었어요. 단순히 집 꾸미기를 다룬 실용서가 아니라, 현재 내가 머무는 곳을 '좋아하는 곳'으로 바꾸자는 메시지가 담긴 에세이였습니다.
저자의 첫 인테리어는 곰팡이 핀 방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사람들은 인테리어라고 하면 많은 경비를 들여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만 생각하지만 저자는 '자기 취향대로 사는 공간'을 목표로 벽면 곰팡이를 닦아내고 좋아하는 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지요. 최소한의 경비로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때부터 저자의 인테리어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지금도 이 책을 '인생책'이라고 해요. '취향'이란 것에 눈 뜨게 해 줬다고요.
저희 아이가 애니어그램 검사 같은 거 해보면 예술가 기질이 강해요. 기질적 특성도 있지만, 이 책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의미의 트리거가 돼 줬어요. 지금도 아이는 음악, 미술, 사진, 패션 등에 자기만의 감성과 취향이 있고 그걸 신장하는 데 스스로 공을 들여요.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아이가 그 책 모서리가 닳을 만큼 열심히 읽더군요.
드라마에서 시작된 책 읽기
그다음은 아이가 신나게 보던 드라마였어요. 법률 드라마를 좋아하던 아이가, 검사가 나오는 한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였어요. 그런데 거실에서 틀어놓은 대사가 제가 책에서 읽은 내용하고 똑같았어요. 어? 뭐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가서 보니, 책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더군요.
"어? 엄마 저 이야기 알아. 뒤에 저 할머니 이렇게 저렇게 돼."
"엄마가 어떻게 뒷 내용을 알아?"
"아, 저거 실제 현직 검사가 쓴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더라. 책도 재밌는데 드라마도 재밌네."
"어? 책이 있어?"
"응, 우리 집에도 있잖아. 거실 책장, 저기 맨 위에 꽂혀 있어."
아이는 흥미를 보이더니 당장 그 책을 그날 밤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검사님이 글을 잘 써서 재미있긴 하지만 책은 가볍게 술술 읽히는 종류는 아니었는데, 아이는 줄을 치면서 읽더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관심 가질 만한 청소년 문제, 학폭 같은 내용을 다룬 페이지에는 각주처럼 자기 생각을 써놓기도 하고 중간중간 질문을 쓰기도 했어요. 사실 이건 제가 책을 읽으면서 보인 습관인데 가르친 적도 없건만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 같아요. 그렇게 꽤 두꺼운 책을 학교 끝나면 열심히 붙잡고 있더니 삼일 만에 다 읽었어요.
여행에서 시작된 책 읽기
그 해 연말에 저희가 유럽 여행을 갔어요. 자유여행으로 10여 일 간 3개국을 도는 일정이었는데 아이가 여행 일정 짜고 준비하면서 진심으로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세계사나 세계지도, 다른 나라 문물을 다룬 책을 많이 봤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건 아니고 훑어보면서 자기가 관심 가는 분야를 발췌독한 거지만 그게 어딘가요. 시험공부할 때 말고는 스스로 한 페이지도 안 보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습니다.
실제로 여행 내내 아이는 책에서 본 내용과 현장을 비교하며 때론 흥분하고 때론 신기해했어요. 다른 가족들은 여행 후반부터는 몸살나고 지쳐서 힘들어 했는데 아이는 제일 쌩쌩하게 돌아다니며 마지막 코스인 로마의 '포로 로마노'를 반드시 봐야 한다고 우겨서 생략하고 넘어가려다 남편이 약 먹고 같이 갔어요. 남편과 둘이 아이를 보며 젊어서(?) 그런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지적 호기심 앞에 체력이 급상승한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자기가 책을 사겠다며 친구랑 놀러 간 중고서점에서 또 한번의 인생책,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만나지요. 아이는 책 띠지에 적힌 글귀가 가슴에 확 꽂혔다더군요. "여행은 미래를 향한 불안이나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게 한다"는 문구였어요. 여행 가면 오직 그날 일만 생각하잖아요. 그날 어디를 갈까, 그날 뭘 먹을까, 그날 뭘 할까만 고민하잖아요.
막 여행을 갔다 온 아이가 이 구절에 크게 공감하고 책을 사 와서 그날로 밤새 읽더라고요. 저는 한 권을 읽더라도 이런 '몰입'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의 이유>는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이 책 또한 마냥 쉬운 책은 아닌데 아이는 또 줄 그어가며, 각주와 질문을 써 가며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뒤에도 아이는 자기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서 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인디 가수가 '달과 6펜스'란 노래를 불렀는데 책에 영감을 받았다는 가수의 소개를 듣고 그런 책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또, "그 책? 우리 집에 있잖아?" 말해 줬고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온 지친 몸으로 그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뛰어난 문장을 쓴 작가가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어요. 아시겠지만 고등학생이 교과와 직접 연관되지 않거나 학원 숙제가 아닌 책을 짬 내어 읽기란 정말 힘들지요. 아이는 어느새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돌아와 있었어요.
스마트폰밖에 모르던 아이가 책으로 돌아온 건 자기 취향과 관심사가 생긴 덕분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취향과 관심사라는 건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활동으로 생깁니다. 인테리어, 드라마, 영화, 여행, 노래 등등. 저는 아이가 학원 다니기 싫다고 하면 '엄마 돈 굳었다, 잘 됐다' 하며 끊었고, 아이가 음악 듣고 드라마 보는 것에도 별로 간섭을 안 했습니다.
가끔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냥 제 일과 독서, 글쓰기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아이랑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애썼고 아이의 관심사도 공유하며 거꾸로 제가 책에서 읽은 여러 가지 이야기도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수다 떨듯 이야기해줬습니다. 청소년기에 두뇌가 법석을 떨며 한번 크잖아요. 그 시기에 받는 다양한 자극이 자연스럽게 자기 주도적인 독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해 줬고 이를 자극할 만한 적절한 도서를 제공해 줬어요. <공부머리 독서법>의 최승필 작가님이 엄마들이 전집 사놓고 스티커 붙여가며 아이에게 한번 읽은 책은 못 읽게 하고 새로운 책 읽도록 강요하는데, 이것만큼 나쁜 게 없다고 강조했었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책의 양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가 커서 전공 관련 논문을 쓰거나 고시를 준비할 때가 아닐까요. 어린 시절 독서는 흥미로운 관심사를 책으로 확인하며 앞서 언급한 '몰입'의 경험을 하는 데 훨씬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요.
읽은 책 또 못 읽게 하는 건, 부모부터 독서가로서 경험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거든요. 좋아하는 책 또 읽을 때의 희열을. 그래서 저는 아이의 취향과 관심사가 학습과 바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존중해 주며 흥미를 가질 만한 도서를 추천(절대로 강요하면 안 되고요)해 줬어요.
독서의 목적은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이것도 최승필 작가님, 판사직을 버리고 에세이와 드라마 작가가 된 문유석 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강조한 바인데 열렬히 동의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다 공부 잘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저는 국문과를 다녔는데 다들 어린 시절 문학소녀들이었던지라 정말 책을 많이 읽었더군요. 그렇다고 그 애들이 다 학교에서 1등 한 건 아니잖아요. 책을 읽는 게 학습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한데 아이들한테 그런 목적의식을 갖고 독서를 권유, 내지는 강요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책에서 멀어진다는 걸 느끼셨을 거예요.
부모부터 스스로 책에서 별다른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아이에게 독서가로서 길을 안내해 주기가 힘들겠지요. 저는 아이들이 책을 '평생 친구'로 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저는 책이 위로자였고 안내자였으며 세상을 누비고 다닐 지도가 되어 줬습니다. 그것만큼 중요한 독서의 목적이 있을까요?
또한 독서의 효용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 어릴 때 엄마표 독서와 독후활동을 시키면서 어리석게도 남의 집 아이와 같은 속도, 같은 모양으로 그 결실이 나타나길 기다렸어요. 내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다 아롱이다롱이 제각각인데 말이죠.
높은 성적 같은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저희 아이처럼 뒤늦게 발현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타기 어렵다는 글쓰기 상은 쉽게 타 옵니다. (물론 상이 목적이란 뜻은 아니고 독서의 열매를 맺는 건 시기도, 형태도 개인마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당장에 성적이 뛰어난 것보다 저는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며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큰 데서 책 읽힌 보람을 느낍니다.
며칠 전 아이가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했어요. 수업 준비를 성실히 해와서 재미있게 가르치시고, 취미 활동도 다양하게 하며 세상사에 두루 관심을 놓치지 않아 아는 것도 많다며 닮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기의 목표는 그런 '건실한 청년'이 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성공한 청년'이나 '돈 많은 청년'이 아니라 '건실하다'는 형용사를 쓴 게 전 무척 마음에 듭니다.
성숙이란 불안을 감내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를 가장 많이 지배하는 감정이 '불안'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이가 뒤처질까 봐, 실패할까 봐, 그리고 좌절할까 봐 부모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런 불안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돌아보니 아이도 그런 엄마를 닮아 가는 중이었나 봅니다. 책이란 좋은 친구를 아이에게 소개해 준 것. 글쓰는 엄마가 되길 참 잘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