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글쓰기 해방클럽, 시작합니다!

by 은수


'나를 추앙하라'는 유행어와 '해방클럽'을 향한 동경을 남긴 채 드라마는 끝났습니다. 드라마 각본은 끝났지만 저는 온라인을 통해 만난 지원자들과 '엄마의 해방클럽'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어요. 매일 글쓰기를 통해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를 잘 헤쳐나가고 싶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해방클럽에 지원한 엄마들은 비슷한 듯 다르고, 특이한 것 같지만 겹치는 각자의 동기를 갖고 이 클럽에서 글을 쓰게 됐어요.


엄마가 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목소리를 잃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지, 엄마면서 어떻게 그래, 엄마니까 견뎌야지, 엄마들은 그렇게 안 해 등등. 엄마의 자리는 분명히 소중하고 특별한데 왜 내가 점점 희미해지는 기분이 드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웠어요. 엄마라는 단어 앞에서 엄마 외의 모든 '나'는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지요.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다양한 '나'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부정하는 사회적 시선과 모성신화를 당연시하는 주변인의 요구는, 자식을 돌보면서 엄마로서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뿌듯한 감정까지 앗아가는 듯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중요합니다.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 복잡하게 얽힌 관계, 안개처럼 뿌옇게 나를 감싼 답답한 족쇄,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 등. 이걸 밝히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언어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어요. 돌아보면 저는 엄마가 되어 느낀 혼란을 결국 글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작가란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이라고도 해요. 예를 들어 이런 것이죠. '유리천장'이란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성실하게 일한 직장 여성들이 마지막에 가서 느끼게 되는 좌절감의 이유를 선명하게 알기 어려웠을 거예요. 한 마디로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길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다 지쳐버리기도 했겠고요. 이 단어 덕분에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딱히 부를 이름이 없어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회적 장벽을 길게 설명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습니다.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란 책은, 그 제목만으로 주부들이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면서 왜 그리 마음이 무겁고 어두운지 생각하게 해 줬고요. 제 두 번째 책 제목은 '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이었는데 리뷰를 보면, 제목을 읽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났다는 엄마도 있었어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응시하고 거기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적당한 단어로, 적절하게 표현할 때 숨통이 트이고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목소리를 잃은 이들을 향해 대중이 내뱉는 무자비한 언어는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맘충'이란 단어로 인해 유모차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 엄마나, 복잡한 시내에서 아이 손을 놓친 엄마가 금세 벌레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일부 지각없는 엄마들을 향한 단어라기엔 이유가 궁색해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회 구성원 그룹별로 폄하 단어가 골고루 있어야 하는데 여성, 특히 아이 키우는 나이 든 여성을 향해 이런 단어가 많이 통용되잖아요. 그들이 사회에서 특별히 몰상식한 존재로 치부될 만한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요. 같은 행동을 해도 더 박하게 평가하죠.


광고와 미디어는 과도한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애 둘 엄마라고 믿기지 않는 동안'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은 하루 건너 한 번씩 보는 것 같네요. 그냥 애 둘 엄마라고 믿기는 게 잘못된 거라는 신념을 은연중에 심어줍니다.

엄마를 향한 말은 아니지만 '인권팔이', '감성팔이', '선비질'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의제를 언급하거나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덜 떨어지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로 규정해 버리죠.


박완서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죠. 작가라면서 '이름 모를 들꽃' 같은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요. 작가라면 특별할 것 없는 들꽃의 이름도 끝내 찾아내서 써줘야 한다고. 김영하 작가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작가라고도 했고요.


'엄마의 해방클럽'에서 우리 엄마 작가들은 일단 우리가 무엇에서 해방되고 싶은지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갈 거예요. 실체가 없는 대상과 매일매일 알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이 기분이 대체 뭔지 써보려고요. 엄마이기에 못다 한 말, 엄마라서 마음에 맺힌 말을 하고 또 하면서 응어리를 풀어낼 겁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서 저도 용기가 납니다. 엄마라는 들꽃들의 아우성,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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