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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24. 2022

그래서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는 누가 준 건가요?

"여러분,  이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태어날 때부터 성별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랍니다. 남자인 제가 내일이라도 당장 여자라고 우기면서 여탕에 가도 처벌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자기가 여자라고 우기는 남자가 여탕에 가서 성기를 내놓고 다녀도 아무도 항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대부분의 나라가 이 모양으로, 국민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따가운 오후 햇살에 땀이 흘러 슬며시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바로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아저씨의 이상한 설교에 귀를 막고 싶은데 양손에 짐을 들어 그럴 수도 없다. 주말마다 무슨 교회에서 나와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당할 거라며, 사거리에 대형 스피커를 틀어놓고 행인들을 불러 세웠다. 몇몇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몇은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차별금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할 거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남자 며느리나 여자 사위 괜찮냐고 묻던 수준에서 한층 더 나가 내용이 점점 더 자극적이 되었다.


여자들 몸을 보려고 남자가 목욕탕을 이용할 거라느니, 성기를 노출한다느니, 아이들하고 듣기도 민망했다. 미국에는 우리가 이용하는 욕조 목욕탕이 공공시설로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미국 사는 지인들 말로는 한인 타운 가면 찜질방 같은 게 좀 있는 정도라고 했다. 아저씨가 열정적으로 외치는 내용 대부분은 터무니없고 확인되지도 않는 것인 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 소수자 혐오였다.


"트랜스젠더들을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어제까지 남자였던 사람이 수술했다고 오늘 여자라면서 여탕에 들어와 다른 여성들 몸을 훔쳐볼 건데, 여성 여러분은 괜찮습니까?"


스피커 옆에 세워둔 대형 삽화에는,  음흉하게 생긴(?) 트랜스젠더가 자기가 여자라고 우기면서 여자들 몸을 흘끔거리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명백한 혐오다. 대체 어느 누가 이성의 몸을 훔쳐보려고 성 전환 수술을 한단 말인가? <어바웃 레이> 같은 영화를 봐도 딸의 성 전환 수술을 앞두고 삼대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는가. 참다못해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저기요, 좀 제대로 알고서 말씀해 주세요.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 듣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아저씨는 잠깐 멈췄다가 더 큰 소리로 '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합니다!'라고 항의하듯 외쳤다.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하신 말씀을 실감한다. 그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동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도 모든 종의 개체 중 10프로 정도는 동성애를 한다고 밝히며 동성애는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생물학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동성애자들이 무슨 범죄 집단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근거 없는 증오까지 받으며 모멸감을 느껴야 할까? 그 사거리에 과연 동성애자가 한 명도 없었을까? 만약 동성애자들이 90프로인 세상에서 내가 이성애자라는 이유로 대낮에 여러 사람들에 의해 더럽고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면 제대로 숨 쉬고 살 수 있을까?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동성애와 관련해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다. 아이들과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는 그녀는, 서울에서는 꾸준히 다닌 교회가 있었는데 여기엔 정 붙일 교회를 아직 못 찾았다고 걱정하며 그나마 독서 모임 덕에 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책도 충실히 읽어오고 모임을 할 때도 진지하게 참여하는 그녀가 나도 좋았다. 그런데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자 의외의 말을 했다.


"그래요, 저도 동성애를 막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도 그들을 안 보고 싶은 권리가 있는 거잖아요. 거리에서 대놓고 동성애자들을 인정해 달라고 시위하는 분들, 참 불편해요. 제가 그들 삶에 관여하지 않듯이 그들도 제 삶을 침범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자기네끼리 조용히 동성애자로 살아가면 되지, 왜 자꾸 나와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요?"

잠깐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  생각에는요, 그게 혐오예요. 이성애자가 숫적으로 절대적으로 많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에게 내가 보기 불쾌하니 숨어서 연애하고, 거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도 말고, 합법적인 결혼도 하지 말라고  권리가 있는 걸까요? 그들이 평생을 모멸감 속에 살아가야  권리가 지켜지는 걸까요? 그런 , 권리라고   있을까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죠. 그러면 안 되지만 간혹 종교인을 혐오하는 분들이 있죠. 저도 성당 다니는데 덮어놓고 종교인들을 혐오하는 분들 만나면 좀 당황스럽긴 해요. 만약에 어떤 분이 "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너무 싫은데, 그들이 교회에서 찬송하고 거리에서 포교 활동을 해서 내 정신적인 피로감이 심각하게 상승하는 만큼, 그들을 안 보고 싶은 내 권리도 인정해 달라"고, 앞으로 국가에서 교회 행사는 법적으로 금지해 달라고 해서 그게 정말 통과된다면 어떨까요? 찬송도 금지, 예배도 금지, 정 하고 싶으면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숨어서 할 것. 이런 것들이 강요된 사회라면 우리의 정당한 신앙생활을 막지 말라고 교인들도 거리로 나와 시위라도 하지 않을까요?"


        러시아에서 성 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는 배우 틸다 스윈튼. 러시아는 성 소수자를 향한 배척과 집단적 린치가 심각한 나라다.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배척할 권리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되는 걸 막을 권리도.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은 합법적인 결혼도 못하고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 취직도 못하고 평생을 소외감과 모욕감 속에 살아야 할까? 김승섭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동성애자의 자살 비율이 일반인보다 아홉 배 높게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 사회 동성애자들은 청소년 시기엔 행여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날까 불안 속에 살고, 만약 강제 아웃팅이라도 되면 무시무시한 따돌림과 배척을 감당해야 한다. 학교 교육 그 어느 페이지에서도 '너희가 잘못된 건 아니다'라는 걸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매일같이 부정하며 고통스럽게 지낸다.  


우여곡절 끝에 성인이 되어 무사히 제 짝을 찾아 사실혼 관계를 맺어도 그들의 결혼은 합법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동성애자 부부도 이성애자 부부와 마찬가지로 가정 폭력이나 외도, 재산 분할 등 수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하지만 애초에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몇십 년씩 부부 생활을 하고 살았어도, 상대방이 협박해 맨몸으로 쫓겨난들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들은 법도 제도도 없는 정글 속에서 외롭게 산다. 자살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가 달린 일인데, 삶이 끝장나느냐 마느냐가 걸린 사안인데 내가 좀 불쾌하다고 해서 그들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겉으로는 반대하는 건 아니라면서 그들을 짓밟는 일에 죄의식 없이 동조한다.  


나도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단합해서 타파해야 하는 적이 동성애자들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을 만난 적 없으니 알 수 없으나 내 생각에 예수님은 일반인보다 아홉 배 많은 비율로 자살할 만큼, 안 그래도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동성애자들을 무찌르라고 하실 것 같지는 않다. 소수자를 함부로 배척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을 더 꾸짖지 않으실까.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보이지 않느냐고 나무라시면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필사해 놨던 문장들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다.




"저는 미국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공부하며, 게이 교수님의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레즈비언 교수님의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참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해서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아니었을 거예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한국사회와 매일매일 싸우며 버티다가 소진되어 버리지 않았을까요?

....

무엇보다도 저는 10대 성 소수자들이 걱정돼요. 10대 때는 학교와 집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 관계에서 내 존재가 부정당하면 모든 걸 잃어버린 느낌을 받잖아요. 그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려우니까요. 2014년 인권위 연구에서 중고교 교사 100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그중 39명이 '동성애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어요. 그 교실에 앉아 있었을 10대 성 소수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학대하고 부정해야 했을까요?

....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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