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가 된 글쓰기

by 은수


'자본, 기술, 시간 투자 필요 없는 글쓰기. 글쓰기로 억대 연봉자 되는 법.'

'글쓰기로 수익 올리는 00가지 방법을 배우고 실전에 써먹는 강좌.'

'경력단절 아기 엄마가 글쓰기로 한 달 만에 000 원을 번 노하우 대공개.'


요즘 흔하게 보는 글쓰기 수업 광고 문구입니다. 읽다 보니 '글쓰기' 대신, 오래전에 한번 다녀온 다단계 회사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이 어릴 때 지인을 따라 다단계 회사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애들은 한참 어린데 돈은 꼭 벌고 싶었어요. 하지만 애를 봐줄 사람도 없고, 육아와 살림에 치여 뭘 차분하게 배울 시간도 없고, 집에만 있다 보니 자신감마저 없는, 온통 없는 것 투성이일 때 지인이 좋다면서 강하게 권유해서 따라갔어요.


저기 나온 문구와 당시 다단계 업체 광고 문구가 너무 닮아서 놀랐네요. 저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며, 그렇게 방법이 쉬운데 돈도 굉장히 쉽게 번다는 것입니다. 나가서 제대로 돈 버는 일을 하기는커녕 당장 엄마 찾는 아이를 두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신세였으니 제 나름 배웠다는 사람인데도 강사의 설득에 상당히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동기 부여를 하려고 꺼낸 말에 오히려 마음이 한발 물러서더군요.


"맨날 식탁 밑에 머리 박고 걸레로 바닥이나 닦는 엄마 말고, 근사하게, 멋지게 차려 입고 돈 버는 엄마가 돼 봅시다! 돈? 기술? 시간? 다 필요 없어요. 그런 거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사업이에요."


아이는 끼니때마다 식탁 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저는 하루 세 번 '식탁 밑에 머리 넣고 바닥 닦는' 엄마였어요. 제 이야기가 언급되니까 반갑고 호응이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마음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나의 일상이 저렇게 저잣거리에 내다 파는 떨이물건처럼 표현되는 게 불쾌했어요. 그 바닥 누군가 안 닦으면 어떻게 될 건데요? 집안이 썩어나가지 않을까요? 실체도 불분명한 근사한 엄마보다는 아이가 흘린 음식물을 깨끗하게 닦고 치우는 현실적인 엄마가 되는 게 제 상황에서 더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불신하는 경향이 있지요. 신의, 사랑, 꿈, 소망, 연대. 이런 건 뜬구름 잡는 단어라고 치부하며 눈앞에 보이는 통장 잔고, 신용카드, 아파트, 자동차, 명품시계를 더 믿습니다. 그런데 다단계 강사가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환영에는 쉽게 휩쓸려요. 노름하러 가는 사람 치고 돈 잃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 없지요. 다단계 시작하는 사람 치고 이것 때문에 힘들거나 불행해질 거라고 하는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반드시 자기는 성공신화를 쓸 거라고 합니다. 애석하게도 제 주변에서 이 사업으로 큰돈 번 사람은 못 봤습니다. 드물게 있기는 하나 본데 선발주자였거나 특별히 유리한 어떤 환경적 조건이 있는 경우로 추측합니다.


저런 글쓰기 업체 소개 문구도 뭇사람들을 현혹하는 과대광고일 가능성이 크겠죠. 타고난 글쓰기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별다른 노력도 없이, 시간도 안 들이고 엄청나게 좋은 글을 쓰고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것.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수강비용을 받는 몇몇 업체에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김태완 작가의 <제발 이런 원고는 투고하지 말아 주세요>에서는 피해 사례가 상세히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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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글을 목표로 삼고, 글쓰기를 통해 명예와 부를 얻고 성공하라는 광고가 저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요? 누군가의 피해 사례를 읽기 전에도 저런 광고가 뜰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정성스럽게 온갖 재료를 넣어서 요리한 파스타를, 누군가 뺏어서 이 나간 접시에 아무렇게나 담아 손님상에 내가는 기분이랄까요. 나는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고친 문장을 또 수십 번 다듬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깜깜한 어둠 속에서 노트북을 켜는데, 누군가 이렇게 글쓰기를 얄팍한 돈벌이 도구로 선전하는 게 화가 나는 걸까요?


곰곰이 생각하니 화가 난다기보다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종이 한 뼘만큼은 내 세상으로 삼을 수 있잖아요. 내가 시도했던 재취업이나 재테크는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럼 육아와 살림이라도 완벽하게 해내는 프로 주부가 되고 싶었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그런 방향으로는 취미도 재능도 없었거든요.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것 같아 울적했지만 아이들을 다 재우고 조용해진 밤, 실패로 쓰라린 마음을 종이 위에는 마음껏 펼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한 단락, 두 단락으로 그치던 글쓰기가 어느새 A4 용지 한두 장은 금방 채울 만큼 늘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썼더니 고맙게도 독자들이 생기고 책도 내게 되었습니다. 슬픔, 고통, 시련을 글자로 내려 앉히니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오히려 빛이 되었습니다. 온기가 되어 줬습니다. 성공을 향한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만큼 세상 원리와 반대로 작동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요?

박완서 작가님이 '작가'가 되고 보니 재벌 사모님 앞에서도 하나도 꿇릴 게 없다고 했던 그 기분을, 저는 아주 조금 이해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소비가 미덕이고 화폐 재생산만이 능력인 사회에서 소시민이 재벌 사모님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요. 하지만 박완서 작가님은 진짜 마주쳐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죠. 그건 박완서 작가님이 꼭 많은 책을 팔고 유명한 작가였기에 느낀 감정과는 달랐을 거예요.


연암 박지원이 말한 것처럼 글쓰기는 세상에서 뜻을 다 펴지 못한 이들이 더욱 잘하는 분야입니다. 천지가 열린 이래 세상은 정도만 다를 뿐 부조리하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으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뒷전일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아무런 위화감 없이 섞이는 사람보다는 불협화음 속에서 어떻게든 인간적인 숨구멍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써내려간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그런 글입니다.


물론 예술적인 창작자들도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술 창작자의 노고를 현실적으로 보상해 그 가치를 보호하는 것과, 처음부터 엄청난 보상만 강조하는 것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작가들이 고백하듯이 '나는 베스트셀러를 쓸 거야.', '나는 유명 작가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는 글이 안 써지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글쓰기는 세상에 자신을 뽐내려는 욕망보다는 세상과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 높은 사람들이 더 잘하는, 몇 안 되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글쓰기에 첫발을 내딛는 분들이 허위광고 몇 줄을 읽고 동요하기보다는, 아래처럼 오랜 세월 글쓰기에 몸 담은 작가가 쓴 책을 먼저 찬찬히 읽고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계속 읽었다. '저는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는 작가가 되어 구겐하임 지원금을 받고 남프랑스에서 작업하며 지낼 생각입니다.' 나는 이 지원서가 실은 <뉴요커>에 보내려던 것이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읽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원자는 농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지원서의 내용은 동일한 맥락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다..(중략)..야망이 나쁠 건 없다. 우리 중에서 구겐하임 지원금을 받고 남프랑스나 그 비슷한 장소에서 지내며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작품을 화려한 작가 인생을 살게 해주는 티켓쯤으로 여긴다면, 정말이지 다른 일을 찾는 편이 낫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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