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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24. 2022

부자 친구가 부럽지가 않아

남편이 국제기구에 근무하게 되어 필리핀에 간 지인이 있습니다. 직장 지원으로 아이들은 모두 필리핀에 있는 엄청난 귀족학교에 보내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단한 학교면 위화감을 느끼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 엄마가 말했습니다.


"언니, 위화감이란 것도 좀 뭐가 비슷해야 느끼지. 전용기 타는 그들한테 무슨 위화감이 느껴지겠어? 그리고 그 사람들 우리 안 무시해. 우리가 가게에서 물건 살 때 굳이 직원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듯이 그 사람들도 우리한테 잘해줘. 그냥 서로 다른 세계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시기 질투란 것도 도토리 키재기처럼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거지, 아예 다른 세계 사람들끼리 그런 감정을 주고받기에는 심리적 거리뿐 아니라 실제 물리적 거리도 멀 것 같습니다. 스쿨버스 타러 가는 동선과 전용기 타는 동선이 겹칠 수가 없잖아요.


어릴 때 부자 친구들한테 열등감을 자주 느꼈어요. 강남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친구 부모님 중에는 대단한 분이 많았지요.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같은 반 친구 아버지가 신문에 수시로 오르내리던 거물급 정치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적도 있습니다. 꼭 거물급 정치인 아니더라도 전문직이나 회사 임원 등 집안이 풍족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같은 교실에서 웃고 떠들며 어울리다가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담임 선생님이 친구에게 다정히 와서 가정사를 물어보는 걸 지켜볼 때, 어린 마음에도 뭔가 그 애와 내가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느꼈어요. 그건 나와 상관없는 어른들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결국 내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요. 우리 부모님이 친구 부모님보다 나한테 해줄 수 있는 물질적 지원이 턱없이 적은 것은 물론, 옆자리 친구처럼 선생님의 주목을 받는 배경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초등학교 3-4학년 때 이미 알았어요. 동화책은 가르쳐 주지 않은 세상이었지요. 당황스러웠어요. 그 나이 때 아이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소화해야 하는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긴 어려웠으니까요.


유년시절 누적된 경험으로 부자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곤 했지만 나이 들고 보니 예전만큼 부자 친구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일단 대부분 연락이 끊겼어요. 각자 사느라 바쁘기도 했고 제 주변 강남 친구들은 지방으로 내려간 친구를 살뜰하게 챙겨줄 만큼 정스럽지는 않았거든요. 모임 할 때마다 지방 사는 저는 배려하지 않고 자기들 편한 장소와 시간을 잡아버리니 저도 점점 안 나가게 됐고 아예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소식을 아주 모르지는 않아요. 개중에는 각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 신문에 나오는 동창도 있고 유명 방송인이나 법조인도 있지요. 하지만 멀리 살고 생전 얼굴 볼 일도 없는 사람한테 깊은 부러움이나 열패감을 느끼게 되지는 않아요. 인연이 멀어진 만큼 열등감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Photo by Luca Upper on Unsplash

마흔을 훌쩍 지나고 보니 교실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친구들과 종일 붙어 있던 학창 시절에는 안 보였던 게 보입니다. 학창 시절은 대입이라는 관문을 향해서 다 같이 경주하듯이 달리는 기간이지요. 그 이후에도 생애 주기별로 비슷한 과제가 주어집니다.

취직,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그 시기에는 삶이 직선이에요. 매번 허들을 뛰어넘는 일직선 레이스 코스에서 친구들과 경쟁하는 기분이 들어요. 누가 좋은 대학을 갔나,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에게 당당히 건넬 명함은 있나, 결혼할 때 집은 어느 동네에 마련하나, 이런 것들이 너무 중요해 보이고 그걸로 서로 곁눈질하고 비교합니다. 그리고 동창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속상해하고요.


이제는 인생은 꼭 직선이 아니며 곡선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다른데 왜 일직선상에서 경쟁하며 에너지를 소모했나 되돌아보게 되고요. 세종시 금강에는 '이응다리'라고 불리는, 동그랗게 설계된 보행교가 있는데요, 날 선선할 때는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거기서 경주하듯이 걷는 사람은 없어요. 중간중간 쉼터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난간에 기대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정겹게 손잡고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열심히 뛰는 사람도 있고요.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지방 내려간 저를 챙겨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할 것도 없었어요. 그 애들은 만나서 명품 이야기, 돈 쓴 이야기 해야 하는데 전 거기 낄 만한 소재가 별로 없었거든요. 아마 재미없었을 거예요. 저도 요즘 누구 만났을 때 상대가 최근 나온 신간을 한 권도 모르거나 좋아하는 작가도 없으면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애써 먼저 연락하지는 않게 됩니다. 우린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저는 열심히 돈 모아 소비자의 삶을 누리는 걸 인생 목표로 삼기엔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오베라는 남자>로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스웨덴 소설가 프레데릭 베크만의 작품 <불안한 사람들>에서는 아파트에서 벌어진 인질극이 중심 사건인데요. 이 과정에서 집, 경제적인 안정, 화목한 가족을 둘러싼 욕망과 동경이 언급됩니다.


“그럼요. 그런 사람들은 거기서 살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집을 보러 와요. 거기서 살기만 하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속에 얹힌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덜 싸울 거라고. 맨 처음 결혼했을 때, 그러지 않고는 못 배겼던 그때처럼 서로 손을 자주 만지작거릴 거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프레데릭 베크만, <불안한 사람들>


이 대목을 읽으며 30대 중반 오직 '내 집 마련'이 목표였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에 내 집만 마련하면'이 소원이었고, 그렇게 애태우며 내 집을 장만한 후에는 단번에 화기애애한 가정이 될 줄 알았어요.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크게 싸우고 한밤중에 뛰쳐나와 운전대를 잡고 목적지도 없는 분노의 질주를 하면서 집도 생겼는데 왜 우린 계속 싸우는지 생각했어요.


따지고 보면 삶이 그렇더라고요. 분명히 부모님이, 선생님이 대학만 가면 아무 고민 없는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대학에 오니  다른 방황이 시작됐어요. 그런 방황에 혼란스러워하자 여태껏 당근과 채찍으로 나를 부리던 어른들은 그럴  몰랐냐고, 예상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셨지요. 취직과 결혼, 출산과 육아의 허들도 보여주기식 과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매번 힘겹게 넘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면, 인생은 끝난  알았냐며  다른 과제를 던져 놓으며 이번에도 너를 증명해야 한다고 겁을 줍니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누가 부는지도 모르는 휘슬에 맞춰, 누구랑 하는지도 모를 경쟁을 하느라 턱끝까지 숨이 차도록 달리지 않겠다고. 직선 트랙에서 스스로 내려와야겠다고. 나를 증명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나를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이자고 마음먹으니 크게 누구를 부러워할 일도, 조바심을 낼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글 쓰며 내가 만족하는 삶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보행교에는 중간중간 작은 화단이 설치되어 있어요. 사철 채송화의 앙증맞은 분홍 꽃잎도 사랑스럽지만 황금조팝의 담백한 연둣빛 잎에도 눈길이 갑니다. 화살나무의 생기도 좋지만 늘어진 공작단풍의 여유도 싫지 않아요. 다채로운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화단을 카메라에 담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우린 각자의 인생에서 각자의 꽃으로 피어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나를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더 이로운 일입니다. 자재로서 가치가 높다고 단일한 수종으로 숲을 조성하면, 한 가지 병충해에 모든 나무가 몽땅 죽고 숲이 없어집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경주마가 되라고, 획일적인 인생 설계가 정답인양 주문을 걸지만 이제는 걸려들지 않으려고요. 나답게 즐겁게. 나도 살리고 세상도 이롭게 하는, 내 삶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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