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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21. 2022

오은영 선생님의 잘못?

우연히 기사에서 오은영 선생님을 향한 세간의 비판을 읽었습니다. 오은영 선생님이 양육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를 두고 지나치게 부모 탓을 하면서 이를 시청한 젊은 세대들이 뒤늦게 '내가 이렇게 큰 것은 엄마(아빠) 때문이야'라고 원망하는 현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15년 전 방영된 EBS <생방송 60분 부모> 시절부터 오은영 선생님 방송을 시청해 왔습니다. 근래 방영한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 상담소>도 종종 챙겨 보고 있고요. 오랜 기간 선생님 프로그램을 지켜본 입장에선, 자기 잘못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부모한테조차 오은영 선생님은 가능한 한 에둘러서 말씀하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문가 아니라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도 쉽게 찾을  있는 부모 양육 태도의 문제를, 부모 자신만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더군요. 그런 경우에도 오은영 선생님은 매섭게 질책하기보다는 부모가 지닌 어려움도 충분히 헤아리면서 최대한 완곡하게 말씀하셨어요. 일반 시청자도  부모들을 보면 고구마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한데 전문가가 보기엔 오죽했을까 싶지만, 오은영 선생님은 프로그램에 나온 부모가 소화할  있을 만큼, 알맞은 정도만 조언을 건네셨습니다.


오은영 선생님이 자꾸 엄마 탓을 한다며 모성신화를 공고히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저는 반대 의견입니다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저이지만, 오은영 선생님이 모성애를 신성시하며 엄마에게만 부당하게 많은 짐을 지운다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주로 엄마가 아이와 동반해서 등장하니 아무래도 엄마가 실천 가능한 조언을 하는 면이 있지만, 가정 풍경을 담은 관찰 카메라를 보면서 남편이나 때로는 조부모 역할과 권한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짚고 넘어가셨습니다.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엄마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며 피하는 금쪽이(74회)' 사례도 엄마가 아니라 '남편과 시어머니의 엄마 따돌림'이 문제였다는 걸 속시원히 밝히셨고요.


젊은 세대가 부모 탓을 하는 걸 두고 필요한 내용만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게 문제라는 일부 의견도 있던데, 그럼 누구 탓을 해야 하나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저런 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거나 제멋대로인 개도 견주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나는 사례가 많습니다. 견주가 태도를 바꾸니 개가 정말로 '개과천선'하는 장면이 전파를 탄 회차가 무척 많았어요.


채널에이 자료화면

식물은 또 어떤가요. 저는 한때 베란다 화단을 가꿨는데요. 식물을 키우기 위해 책을 몇 권을 봤는지 몰라요. 인터넷도 찾아보고, 그래도 모르는 건 화원에 가서 물어봤어요. 장미나 란타나처럼 꽃이 화려한 종류는 벌레가 잘 생겨서 해충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율마는 하루 이틀만 물을 말려도 갈색으로 변해 죽어버리는 반면, 호야나 제라늄 종류는 과습하면 죽기 때문에 토분에 심고 건조하게 키워야 했어요. 뱅갈 고무나무는 햇볕이 부족하면 빛을 흡수하기 위해 잎을 넓고 얇게 만들어서 잎이 흐물거리게 되니 실내에 두고 키우면서도 채광에 늘 신경을 썼지요.


동식물도 이렇게 공부하고 배우며 키웁니다. 하물며 사람을 키우면서 아무 공부도 하지 않고 뚝딱 부모 노릇을 잘할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겠죠. 가끔 아이 기질이나 성향 탓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식물도 제각각 특성에 맞춰 주인이 공부하며 키워요. 식물이 주인한테 맞추지 않습니다. 그런 걸 기대하는 주인을 만났다가는 결국 과습이나 기타 문제로 시들어 죽게 되겠지요.


아롱이다롱이 제각각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 보고 부모한테 맞추라는 요구는 억지입니다아직 약한 아이들에겐 어른의 잔인한 주문으로 느껴질 거예요. 실제로 아이가 발달 지연이나 감각 이상 등 선천적인 어려움을 갖고 태어나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극히 일부 사례입니다. 대부분은 양육 환경,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이지요.


과도하게 엄마 탓을 하는 게 문제라고 느끼는 사건은 금쪽이에 방영된 사례가 아니라 따로 있어요. 한때 신문에 오르내린 '햄버거 사건'이나 '아파트 내 교통사고 3세 아동 사망 사건'같은 거예요. 이런 불가항력인 문제를 두고 엄마 욕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4살 아이가 상한 햄버거를 먹고 햄버거 병이라 불린  '용혈성 요독 증후군' 때문에 병세가 악화됐을 때 '4살 아이한테 햄버거를 먹이다니 미친 엄마다'란 비난이 쏟아졌죠. 7살, 3살 형제를 데리고 아파트 주차장을 이동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봉고차에 3살 아이가 치어 사망했을 때도 '엄마는 옆에서 뭐했냐'는 질타가 이어졌고요.


정작 부모 탓인 문제에 대해서는 왜 부모 탓을 하냐고 항변하면서, 부모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순간의 사고나 예측하지 못했던 불운을 두고 벌떼처럼 부모를 공격하는 이중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요.

응당 부모가 아이에게 제공했어야 할 정서적 지지를 하지 않은 데에는 너그럽고, 부모도 인간인지라 막을 수 없었던 사고에 대해서는 야박하게 구는 것. 부모 역할에 대한 고민이 빈약한 우리 사회 현주소를 보는 듯합니다.


젊은이들이 부모 탓을 하면 사과하면 됩니다. 얼마나 상처가 깊었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했을까 애틋하게 생각해야죠. 엄마(아빠)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고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혹여 부모에게 받았던 상흔이 심해도 자녀들은 결국 극복합니다.


며칠 전 아이에게 "가만 보면 너희는 참 괜찮은 애들인데 엄마아빠는 되게 별로인 거 같아. 우리 같은 부모한테 너희 같이 괜찮은 애들이 태어났다는 게 신기해"라고 말했어요. 아이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엄마, 부모가 괜찮으니까 괜찮은 아이들이 된 거야. 부모가 완전 별로인데 어떻게 애들이 괜찮아? 엄마아빠는 완벽하진 않지만 늘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거 알아. 그래서 고맙고, 그것만으로 나에겐 훌륭한 부모님이야"라고 답했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닙니다. 배우고 노력하는 부모, 잘못을 했다면 인정하고 바뀌기 위해 애쓰는 부모입니다. 오은영 선생님은 그 길잡이 역할을 너무 잘해주시는 분이라 생각하고요. 오은영 선생님 탓을 하기 이전에 부모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부모 노릇을 잘할 수 있도록 사회는 어떤 지원과 교육을 해줘야 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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