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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01. 2022

트레바리, 회비가 빌런을 막는 장치일까

서평을 쓰려는 건 아니다.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다가 트레바리를 언급한 부분을 읽고 궁금해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트레바리가 문전성시를 이룬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저렴하지도 않은 회비를 내고 트레바리에 가입해서 독서 모임을 하는지 물었더니, 그의 지인이 "트레바리엔 이상한 사람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다른 독서 모임 나가면 꼭 이상한 사람들이 한둘씩 있"어서 분위기를 망치는데 비싼 회비 덕에 이상한 사람이 안 온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여기에 대해 좀더 파고들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서는 이상한 사람을 막기가 너무 어렵다"며 오프라인 공동체의 강점을 살펴보는 것으로 글이 흘러갔다.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공감하며 본 책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상한 사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나 또한 독서 모임을 하면서 다단계나 알 수 없는 종교 전파를 목적으로 한 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본 건가 싶은데 문맥상 그렇게 좁은 범주 같지 않았다.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는 광범위한 정의를 내리면서 그들을 회비로 걸러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그 지인의 시각인지, 저자의 시각인지 모르겠으나 저자가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느낌이 들었다.


트레바리는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가입비를 내는 독서 모임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회비는 모임에 대한 최소한의 열의와 소속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비가 "분위기를 망치는" 빌런을 막는 장치는 되어주지 못 했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트레바리는 석 달에 30만 원 전후라는, 비교적 비싼 회비를 걷는다. 비싼 만큼 빌런을 막는 더 꼼꼼한 거름망이 되어 줄 거라는 믿음에는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모임에서 혼자만 너무 발언을 많이 한다던가,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발언을 하면 거의 공격하는 수준으로 몰아붙인다던가, 대등한 자격으로 만난 모임인데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우월한 사람인양 지나치게 훈계조로 말한다던가, 하는 사람들을 두고 굳이 경제적 수준을 따진다면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튼 제각각이기에 '일정 수준의 회비를 내는 사람 중에는 이상한 사람이 없다'는 명제가 보편성을 지니긴 어렵다.


Photo by Redd on Unsplash

"이상한 사람"을 걸러내는 장치가 회비라는 시각에도 수긍이 안 가지만 조직이나 단체에서 빌런 한두 명을 배척하면 그 집단이 잘 돌아갈 거라고 단정하는 태도도 문제라고 본다. 때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한 명이 빠지고 조직 운영이 매끄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신기한 건 빌런 한 명을 쫓아내고 나면 기존의 누군가가 새로운 빌런이 되곤 했다. 대학 동아리나 직장, 모임 등에서 자주 겪은 일이다. '쟤만 없으면 우리 모임은 분위기 진짜 좋은데!'라고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누군가를 배척하다 보면 결국 그가 사라진다. 잠시 화기애애하고 아무 갈등 없는 것 같지만 또다시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또 다른 "쟤"가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논의하고 해결할 만한 소통 창구나 시스템이 부재한 탓 아니었을까?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합심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손쉽게 한 명을 원인으로 몰고 간 건 아닐까?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의 실책을 언급하며 페널티를 주라는 권민우 변호사에게 상사인 정명석 변호사가 "서로 의견이 달라 문제가 생겼으면 이야기를 하고 풀어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잘잘못 따져서  상 주고 벌주고", 그런 것만 중요하냐며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 나왔다.


신원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인 학교나 직장에서도 사기 치는 사람이나 성추행하는 사람도 있으니, 서로의 신원을    없는 모임에 들어갈  조심스러워지는  당연하다. 회비나 가입비가 보다 안전한 모임을 만들어주는 울타리가  거라고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독서 모임에 한해서 생각해 본다면 비싼 회비가 범죄자를 가려내는 정도가 아니라 "이상한 사람"까지 걸려주는 촘촘한 여과기가 되어 주진 못했다. 모임에 자꾸 빌런이 등장한다면, 빌런을 탓하기 이전에 개개인의 성향과 특성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배려하는 운용의 묘가 부족한지 되짚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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