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글쓰기 수업에서 '20분 글쓰기'처럼 시간을 짧게 주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도록 합니다. 간단한 제시어나 첫 문장만 주고 달리기 호각을 부는 체육 선생님처럼 '시작!'을 외치면 수강생들이 쓰기 시작하는 거지요. 처음에는 '이 짧은 시간에 무슨 글을 쓸 수 있어요?'라는 질문이 가득 찬 얼굴로 주저하던 수강생들도 어느새 자신의 글에 흠뻑 빠져들어 정신없이 펜을 움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평소 과제로 집에서 써온 글보다 더 좋은 글이 종종 나온다는 사실. '좋은 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상 에세이 같은 경우 술술 읽히고 독자가 공감할 수 있으면 대체로 좋은 글이라고 평합니다. 술술 읽히고 공감이 가는 글. 언뜻 까다로운 요건이 아니니 쉽게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수업 중에 이런 글을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기본적인 글쓰기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보다는 글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 더 멋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수강생들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하고 회의해서 글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글짓기 대회를 거치며 솔직하게 글을 쓰지 않는 법에 길들여졌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내가 잘 아는 것을 쓰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 거죠.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내가 쓸 수 있는 이상으로 잘 쓰려니까 글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오히려 독자가 공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어깨에 힘을 풀고 써야 하는데 쉽지 않지요.
'20분 글쓰기'는 어깨에 힘을 풀어야 한다고 의식하기도 전에 옆사람도 쓰고, 뒷사람도 쓰니 엉겁결에 같이 막 펜을 놀리게 되는 건데 이때 남이 볼세라 겹겹이 쌓아놓고 좀처럼 풀어놓지 않던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됩니다. 누군가 흉볼까, 이런 걸 쓰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 글 쓰면서 들었던 온갖 잡념이나 계산이 끼어들 새가 없으니 오히려 독자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한 번은 다이어트를 소재로 글을 쓴 수강생이 있었어요. 에세이 과제를 내줬는데 다이어트의 방법론과 효과, 다이어트의 최신 유행 경향에 대해 보고서를 써오셨더라고요.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공들여 써 오셔서 글은 나무랄 데 없었어요. 하지만 에세이라고 보기가 어렵고 제가 낭독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좀 지루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군요.
그분 하고는 즉석 질의응답을 통해 글감을 찾아냈습니다. 그분이 다이어트와 관련해 방대한 지식을 쌓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코로나 시국에 집에만 있으면서 급격하게 체중이 불어서 생활에 불편감을 느끼고 남들 시선에도 공연히 위축되어 힘든 시기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본인의 이 사연을 쏙 빼놓고 다이어트 방법론과 실효성만 쓰니 누가 읽어도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논문 같은 글이 나온 겁니다. 그분은 다시 정리한 글감으로 다이어트를 소재로 재미있고 진솔한 자신만의 에세이를 완성했습니다.
글을 쓸 때 처음부터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특히 초심자의 경우 더 그런데 처음 글을 쓰는 분일수록 자기 글이 너무 부족하다며 한 줄 쓰고 지우고, 한 단락 쓰고 지우고, 끝없이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퇴고란 것도 일단 어느 정도 지면을 채운 다음에 해야 하는 건데 지나치게 지우기만 반복하면 결국 지쳐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조차 사그라들어요. 더구나 자기 이야기 말고 어디에선가 본 근사한 소재를 찾으려니 더욱 힘들지요.
저희 아이가 대학에서 조금 특별한 전공을 하고 싶어 해서 글쓰기를 연습 중인데요, 어느 날 아이가 책상 위에 붙여 놓은 메모가 눈에 띄었습니다. 수업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아이 책상에서 이런 메모를 봤었다고 말하니 다들 자기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라며 공감하셨어요.
"글 쓸 때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지 말기. 완성 못해도, 거지 같아도 일단 쓰자."
입시를 위한 글쓰기라 해도 아이가 글 쓰면서 마주한 장벽은 여느 창작자와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대단한 작품을 쓰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저만치 혼자 앞서 있는데 막상 내 글을 보니 너무나 볼품없는 거예요. 마음은 이미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걸작을 쓰고 있는데 타자를 치는 내 손은 느릿느릿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어요. 완성은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고, 종내에는 '그렇지, 내가 무슨 글이야, 내가 무슨 작가야' 노트북을 덮어 버립니다. 아이는 아마 그런 순간을 수없이 마주해야 했을 거고 그 시간을 견디고 낸 결론이 '거지 같아도 일단 쓰자'였을 겁니다.
에세이를 쓴다는 건 책상, 냉장고, 나무처럼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우리 기억의 편린과 생각, 감정, 그리고 그것들이 버무려져 만들어낸 무형의 시간을 활자로 재탄생시키는 겁니다. 한 편의 원고를 끝맺을 때까지 그 재탄생에 의심이 들고 회의하게 되는 건 쓰는 사람들 대부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중에 끝까지 쓰는 사람만이 재탄생하는 원고를 보며 희열을 느끼게 되는 거지요.
아이가 학원 선생님이 책에서 인용해 보내준 글귀라며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은 구절도 있어요. 출처가 없어 무슨 책인지 모르지만 전문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처음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다음에는,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강한 믿음은 모든 예술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한 번씩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모든 예술 활동의 원동력이다."
일단 시작하기,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어보기. 인생도 크게 다를 것 없지 않나요? 한편의 글을 기어이 완성해 얻게 되는 자신감은 어쩌면 어떤 현실적인 보상보다 더 큰 선물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인생을 보다 견고하게 받쳐줄 자산이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