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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Feb 20. 2023

챗 gpt가 책을 냈다고요?


챗 gpt가 책을 냈습니다. 챗 gpt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낸 책들은 있지만 이 책은 온전히 챗 gpt가 저자로서 출간했다고 하네요. 원고가 완성되기까지 30시간이 걸렸다 하니 작가 지망생들, 작가들 모두 안 그래도 읽는 사람은 줄고 쓰는 사람은 늘어 힘든 시대에 설 자리가 남아 있을지 걱정한다고 합니다.


제법 책이 팔린 것 같지만 평가는 과히 좋지 않더군요. 이번에 나온 책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은 엇비슷한 자기 계발서를 짜깁기한 것 같다는 게 중론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딥러닝, 머신러닝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 자기 계발서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라 더 세밀한 글, 작가의 서사를 품은 글도 유기성을 갖춰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지만 늘 속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도서관 학생들과 재미있게 수업하고 있는 <침묵의 봄>에서도 '화학자들이 새로운 살충제를 고안해 내는 속도가 유독물질 영향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를 너무 앞지르는 문제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합니다.

챗 gpt와 살충제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가 인간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회적 합의나 규제가 논의될 여유조차 없이, 기술 혼자 치고 나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술을 이윤 창출에 이용하는 기민함이 과하다는 점에서는 두 가지 상황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제조가 금지된 프레온 가스 사례도 그렇습니다. 한동안 대단한 신소재로 각광받고 산업 전반에 엄청나게 많이 쓰였어요. 이정모 교수님의 <과학이 가르쳐 준 것들>을 보면 프레온 가스에 대한 경고가 이미 1974년에 나왔고 1985년에는 실제로 남극에서 심각한 오존층 파괴가 관찰되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프레온 가스 덕에 생활의 편리를 누리는 사람들은 냉담했고 프레온을 개발한 토머스 미즐리는 무해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자들 앞에서 프레온 가스를 직접 흡입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오존층 파괴 물질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자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1987년에 체결되긴 했으나 지금 등장하는 기술은 이렇게 10여 년씩 늦게 대처해서야 그 사이 혼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네요.



생명공학 측면을 볼까요. 맞춤 아기도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2016년에 이미 미국에서 유전적으로 세 부모를 둔 아이가 태어났어요. 2018년에는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나서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관련 연구자들조차 일제히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맞춤아기는 각국이 연구 윤리 문제로 제한을 걸어두고 있지만 '저희 아이는 배우 공유의 키에 방탄소년단 지민의 목소리, 블랙핑크 제니의 눈동자를 갖게 해 주세요'가 실현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 같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우성 아이와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열성 아이를 차별하는 영화 <가타카>가 망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가타카>에서는 입사 시험이 피검사잖아요. 최소한 생명공학에서는 연구 윤리라도 존재해서 락을 걸어두고 있지만, 챗 gpt는 무엇을 어떻게 제한할지 논의조차 되지 않았는데 벌써 책이 나와서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을 상용화하기 시작한 게 제가 대학교 졸업할 때쯤입니다. 천리안이나 하이텔로 대화하고 친구 사귀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광범위한 자료를 다 인터넷으로 찾는 세상이 되어 있더군요. 인터넷이 없는 20여 년을 경험했던 세대로서 지금이 더 좋은지 생각해 봤어요. 그때보다 편리한 건 맞는데 그때보다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학생 때 신문 읽던 게 취미인 저는 아침마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들고 대학 도서관 1층에 진열된 여러 신문들을 읽었어요. 통유리창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 커피향과 막 인쇄된 신문의 종이냄새, 조용한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는 몇몇의 발걸음 소리. 지금은 퍽 다릅니다. 아침에 눈 뜨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어수선한 세상 소식에 마음이 울적해지는 적이 더 많지요.


세상사 심난한 거야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점은 있습니다. 어이없는 기사를 보면서 옆사람도 같이 한숨 쉬고, 내가 펼쳐놓은 기사를 다른 학생이 와서 집중해서 읽고,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어머, 이것 좀 봐' 친구를 부르기도 하고,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사회면이나 정치면 기사를 보고서도 세상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과 SNS 등, 각종 신기술이 우리의 소식통이 되어주는 것 같지만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된 채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영국이 2018년 내각에 '고독부'를 설치했겠습니까. 과학기술 발전으로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관계망이 늘어난 것은 물론 이제 로봇이 창작의 영역까지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어쩐지 더 외롭고 삶의 만족도도 떨어진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저만의 착각일까요.

편리해지는 것이 곧 행복해지는 지름길인지 잘 모르겠고 조금 더디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은 이윤 창출을 위해서라면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이쯤에서 최원형 작가의 <착한 소비는 없다>에 나온, 10억 마리 야생동물이 죽고 코알라의 기능적 멸종을 가져온 호주 산불 이야기에 눈이 갑니다.


"위성사진에도 시뻘건 불길이 찍힐 만큼 심각했던 아마존 산불, 아마존 산불보다 3배 큰 규모로 발생한 시베리아 산불 그리고 시베리아 산불의 2배 이상 규모인 호주 산불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이 산불이 결국 한없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란 점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전 세계 산불은 규모가 점점 커지는 양상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과학과 기술이 진일보한 21세기에도 산불을 끄려면 결국 비가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까지고 과학과 기술에 모든 걸 내맡겨 둬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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