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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l 26. 2023

이 모든 게 오은영 선생님 때문이라뇨

서이초의 비극을 두고 갑자기 모든 문제의 원흉이 오은영 선생님인 것처럼 기사가 나오고, 사람들이 오은영 선생님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비난 댓글을 다는 것에 어리둥절하다 못해 개탄스러움을 느낍니다. 우리 사회는 왜 문제를 대면했을 때 차분하게 들여다 보기보다는 마녀사냥부터 하는 걸까요.


저는 20년 전, 오은영 선생님이 EBS <생방송 60분 부모>에 나오던 시절부터 지켜본 사람입니다. 오은영 선생님은 단 한 번도 훈육이 필요 없다고 한 적이 없고, 문제 행동을 일으킨 아이를 두고 무조건 공감만 해주라고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어림잡아도 그 옛날부터 선생님이 나오는 방송, 강연 등을 100번은 본 거 같은데 그런 메시지는 없었어요. 선생님이 강조하는 건 화내지 않고 일관성 있게 훈육하는 것과 부모 자녀 관계에 기본적인 애착이 잘 자리 잡아야 훈육을 비롯한 인성 지도가 잘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은 좋은 점수가 아니라 끈기 있는 자세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니 결과를 갖고 비난하지 말 것,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었어요. 이 중에서 틀린 말이 있나요?


총론 아니라 세부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이견도 있을 수 있지요. 상황에 대한 대처도 전문가에 따라 말이 약간씩 다르기도 해요. EBS <생방송 부모>는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와 달리 여러 전문가 선생님들이 번갈아 나왔거든요? 오은영 선생님뿐 아니라 조선미 선생님, 이보연 선생님, 김수연 선생님 등이 자주 등장하셨지요. 그분들도 앞서 언급한 저 이야기들과 다 통하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구체적인 상황은 다 달라서 전문가의 말이라고 꼭 들어맞지 않을 수는 있어요. 당시 전문가 한분이 알려주신 '생각하는 의자' 앉히기를 큰애에게 했는데 돌이켜보면 저희 애에겐 완전히 잘못된 훈육 방법이었어요. 그때 저는 작은애 출산으로 지치고 거의 산후우울증 상태여서 큰애를 잘 돌보지 못했어요. 이런 엄마에게 아이는 큰 불안을 느끼고 자기 좀 사랑해 달라고 갈망하는 상태였는데, 말 안 듣는다고 의자에 강제로 붙잡고 앉히고,  심지어는 방에 가두기도 했으니 아이에게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을 얹어줬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멀어질까,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의 아이에게 적합한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해당 내용을 강조한 전문가 선생님을 원망하진 않았어요.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는데, 기계적으로 적용했던 저의 부족함을 돌아봤습니다.


오은영 선생님이 무조건 엄마 탓을 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틀린 말입니다. 대부분의 방송에 엄마가 나와서 선생님한테 조언을 구하니 당연히 엄마가 할 수 있는 솔루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오은영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라 왜 저런 방송에는 주로 엄마만 나올까, 의문을 갖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그래도 요즘은 아빠나 할머니 등 다른 양육자가 같이 나오는 횟수가 많아지긴 했어요. EBS <생방송 부모>에는 거의 엄마만 나왔거든요.)



사람들의 공분을 샀던 74회만 봐도 그래요. 엄마가 자기 방에만 들어와도 까무러치듯 분노하고 소리 지르는 초등 저학년 아이가 나왔었지요. 아무리 상담센터를 다녀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부부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일 나간 사이 계속해서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가르친 할머니의 행동이 문제라고요. 할머니와 남편이, 워킹맘인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키우며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나쁜 사람이라고 가르쳐서 아이에게 큰 혼란을 줬다고요. 금쪽이 가정이 다닌 기존의 상담센터에서 보지 못한 가정 전체의 역동을 파악하시더군요.


오은영 선생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가 문제 행동을 일으킨 아이를 두고 그냥 무책임하게 공감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 조선미 선생님은 아이에게 지나친 훈육과 통제만 하는 한 엄마에게 말씀하셨지요. "만약 남편에게, 명품가방을 보면서 저 가방 갖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이 우리 형편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말라고, 화부터 내면 어떨까요? 말이라도 갖고 싶을 텐데 우리 형편에 못 사줘서 나도 안타깝다고 말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비난하면 안 돼요. 감정은 공감해 주되 행동은 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라고요. 많은 육아서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고 오은영 선생님의 처방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잘못된 공감이나 잘못된 마음 읽기는 오은영 선생님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예를 들어 친구를 때린 아이에게, "친구가 정말 미웠나 보구나."와 같이 잘못된 행동을 초래한 감정을 합리화하는 데 무게를 두면 안 된다고요. 조선미 선생님도, "감정을 공감해 준다는 걸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예를 들어 화가 난다고 유리창을 깨려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그렇구나, 말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단호하게 팔을 잡아서 행동을 제지해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오은영 선생님은 이런 부분을 실제 실행에 옮기는 걸 방송에서 보여주시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오늘날 교육현장에는 문제가 너무 많아요. 누군가 보내준 대치동 학원 문자에 '초등 1학년생들 대상으로 중등 1학년 수학심화를 한다'는 안내가 있어서 제 눈을 의심했어요. 알고 보니 5,6세에 초등 6년 수학을 끝내고 7세에 중등 1학년 수학을 한 다음, 8세에 중등 1학년 수학 심화를 한다는 거예요. 교육과정을 완전히 무시한 아동학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유아 때부터 학대 수준에 가까운 학업 부담과 경쟁 속에 병들어가는 아이들이 보이는, 여러 이상 행동을 교사 개인에게만 맡겨 해결하라고 할 수 없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해요. 학급당 인원수도 줄여야 하고, 학교 프로그램도 경쟁보다는 협동을 배우도록 장려되어야 하며, 상담교사의 운신이 학교장에 의해 너무 제한되지 않도록 상위기관에서 관리 감독도 잘할 필요가 있어요. 아동과 청소년은 어른과 달리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병행되면 어른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나아지거든요.


너무 죄질이 나쁜 학교폭력은 이수정 교수 지적대로 학교가 아니라 경찰 전담팀이 해결하도록 협업을 해야 하고요. 일부 학부모의 악성민원은 교사가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민원 창구가 일원화되어야 하며, 법 기술자들이 권력과 법 지식을 이용해 학교폭력을 저지른 자식을 두둔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의 방어 시스템도 갖춰야 할 거예요.


무엇보다 지나친 줄세우기와 경쟁 속에서 극도로 예민해지는 학부모들이 중심을 잡을 필요도 있습니다. 내 자식만 잘살게 하는 교육 말고,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우리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큰 틀에서 봐야 내 자식 교육도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있겠지요. 말도 안 되는 선행 학습에 쫓기지 않고요. 사회가 병든 걸 당장 바꾸진 못해도 일단 나부터 중심 잡는 거예요. 공부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고, 그저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게 훈육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고, 우리가 먼저 건강한 부모가 되어야 하겠지요.


문제가 이렇게 총체적인데 갑자기 오은영 선생님한테 모든 화살을 돌리며, "이 모든 게 지나친 오냐오냐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어른의 건강한 공감과 지지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지는 않아요. 스웨덴 청소년 전용 도서관에는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 주는 어른이 상주합니다. 정교하게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과 청소년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언어로 잘 풀어내고 훌훌 털어낼 수 있도록 그저 '공감하며 잘 들어주는 어른'이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교육철학이 구현되는 데에는 꼭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의지의 문제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후퇴할 조짐이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서이초 학부모가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해라'라고 했다던데 그건 공감도, 지지도, 학생인권 보장도,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권력형 갑질이잖아요. 그런데 뜬금없이 오은영 선생님 때문이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체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언사가 쏟아지고, 학부모와 교사를 무슨 대치 중인 적군처럼 몰아가며,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을 허지웅 작가 말처럼 땅따먹기도 아니고 대립하는 개념으로 규정하는 정치인들의 말들에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전문가 한 명이 모든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빈틈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한두 가지 허점으로 지극히 합당한 육아원칙이나 교육철학이 모두 부정되며 과거로 회귀하자는 움직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김현수 선생님이 쓴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을 읽으며 병든 사회에서 결국 병들어가는 아이들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 삶의 질은 부모와 교사, 사회가 어떠냐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고, 아이들은 결국 어른이 빚은 대로 커가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 같네요.


"한국 사회는 아주 획일적 사회입니다. 다양한 삶, 행복, 꿈이 광고되는 것 같지만 속마음과 실제 행동은 여전히 획일적 기준에 의해 강요되고 있습니다.(중략) 획일적 기준 하에 우수한 결과를 낼 능력이 없으면 이 사회는 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더 강해졌습니다. '쓸모가 없다면 필요도 없다'는 분위기는 아이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각기 다른 여러 재주를 타고났는데, 그중에 한 가지 재주 쓰는 아이들만 잘한다고 하고, 또 그 재주 말고 다른 재주는 쓰지 말라고 하면, 나머지 재주꾼들은 구경이나 하고 뒹굴뒹굴하면서 재주를 썩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낮잠이나 자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재주를 잘 쓰는 아이들이 금은보화와 권력을 다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면, 대들거나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싸워봤자 소용도 없으니 그냥 잠이나 자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타고난 재주까지 까먹지 않고 어른이 되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원래 지녔던 재주까지 모두 잊습니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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