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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19. 2023

오은영의 시대가 가고 조선미의 시대가 왔다?


얼마 전 유퀴즈에 조선미 선생님이 나오신 후에 각종 SNS와 온라인 카페에서 조선미 선생님 방송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조선미 선생님이야말로 '현실 육아'에 대한 진정한 조언을 해주는 분이며, '오은영의 시대는 가고 조선미의 시대가 왔다'고까지 하는 분도 봤습니다.


저는 거의 20년 전에 두 분이 EBS '생방송 60분 부모'에 나올 때부터 꾸준히 지켜본 애청자인데요, 두 분의 이야기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오은영 선생님은 훈육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부모의 욕망과 욕심으로 점철된, 감정적 훈육이 어떻게 부작용을 낳는지 강조해서 알려주셨을 뿐인데 요즘의 여러 학교 문제를 갖고도 느닷없이 오은영 선생님 탓을 해서 제가 다 어리둥절했습니다.


조선미 선생님 또한 아이들 감정을 부정하고 강압적으로 키우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마음은 읽어주되 행동은 통제하라'는 건 어제오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수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한 이야기이며, 조선미 선생님도 오래전부터 강조하신 사항입니다. 제가 큰아이 다섯 살 무렵에 적어 놓은 메모에도 있어요..


조선미 선생님은 늘 '연령에 맞게'를 강조하시고, 모든 훈육은 부모와 기본적이고 건강한 애착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는 걸 전제하고 계세요. 아이가 강도 높은 비난을 부모에게 반복적으로 받아 자아상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면, 기본적인 신뢰와 애착이 무너져 있는 지경이라면, 강력한 훈육은 독이 되겠지요.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육아 전문가의 조언을 자기 듣고 싶은 대로, 입맛에 맞게 변형해서 수용하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에 보면 오은영 선생님을 들어야 할 분은 조선미 선생님을 듣고, 조선미 선생님을 들어야 할 분은 오은영 선생님을 듣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훈육보다는 손상된 부모 자녀 관계를 회복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할 분들이 엉뚱하게도 조선미 선생님의 말씀을 매우 '선택적으로' 듣고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반대로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고 때론 단호하게 해야 할 때조차 아이에게 약해지는 부모님들이 오은영 선생님을 역시나 '선택적으로' 들으며 위안을 얻습니다.


www.bing.com 에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공부만 해도 그래요. 조선미 선생님이 초등 아이가 "공부는 왜 해?"라고 질문할 때, "아이가 공부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하는 게 아니니 그냥 하라고, 짧고 단호하게 말하면 된다"라고 하신 걸 두고 역시 내가 맞다고 무릎 치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주의할 게 있습니다. 조선미 선생님이 '초등 저학년 학생이 하교 후에 공부하는 적정 시간은 30분' 정도라고 하셨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어제도 한 공부 카페에 "초등 3학년인데 학원 끝나고 6시 30분에 오면 한 시간 정도 저녁 먹고 쉬고, 숙제하느라 3시간은 책상에 앉아 있으니 안쓰럽다"는 글이 올라오더군요. 안쓰럽다면 그렇게 안 시키면 될 것 같은데, 극심한 경쟁에서 뒤처질까 초조해서 그만두게 하기도 쉽지 않으신가 봅니다.


'초등 저학년이라면 하교 후 하루 30분 공부면 제 양을 다하는 것이다'라는 전제는 쏙 빼놓고 '아이가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른다고 할 때 굳이 설득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짧게 지시하라'는 뒷 이야기만 취하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은영 선생님도 아이들한테 공부시키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다만 '공부하는 목적'을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 두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부하기 싫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공부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알아내야 하는, 일종의 도전입니다.


아이들이 이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셨지요. 지나치게 잘한다, 못한다, 평가 위주 피드백만 돌아오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못할까 봐 두려운 공부'가 되어버려 점점 더 공부하기 싫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요. 저는 이 말씀에서 틀린 점을 찾을 수가 없네요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는 거 맞는데요, 연령에 적절한지, 부모 욕심에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닌지, 부모 취향과 선호도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두루 살펴봐야 하는데 이런 면은 주의 깊게 들여다 보지 않는 듯해요.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들 삶에는 여전히 안타까운 면이 많습니다. 아동 삶의 질은 아직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아동인권 후진국을 못 벗어나는 실정이고(통계청,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보고서), 이토록 공부와 성적의 노예처럼 살아가는데, 한편에서는 또 '금쪽이가 아니라 망나니' '금쪽이가 아니라 개쪽이'라며 어른들 잘못으로 생긴 문제로 아동이 혐오까지 받습니다.


아이들한테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고, 가르칠 것은 단호하게 가르치는 것. 너무나 중요하죠. 그러나 오늘날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문제가 그저 혼내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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