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 교수님이 자신한테 너무 열광하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최고예요", "교수님 수업 너무 좋아요",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상대를 맞춰놓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바로 등 돌리며 비난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우군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고마운 것 아닌가? 이런 유형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교수님이 오히려 부러웠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초보 작가 입장에서는 최고라며 치켜세워주는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교수님은 그 나름 사회적 지위도 있고 인생에서 이룬 성취도 있으니 간신히 첫 출간을 한 사람의 초조한 마음 같은 건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첫 출간이 마지막 출간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신춘문예만 해도 그래요. 당선되기는 너무나 어렵지요. 그런데 당선된 이후로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해 결국 당선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명작가의 투고를 받아준 출판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내 불안했습니다. 이 출판계에 내가 계속 남을 수 있을까? 글 잘 쓰는 작가도 이렇게 많고, 특별한 경험이 있는 작가도 넘치게 많은데, 애매한 재능, 별다를 것 없는 경험,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이력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각자의 물줄기는 흘러가기 마련인지, 아득해 보였던 앞날이 성큼성큼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두 번째 책도 내고, 글쓰기 수업도 본격적으로 하고 다니면서 "작가님"이란 호칭도 처음만큼 어색하지는 않게 되었어요. 차츰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 글이 너무 좋다거나, 작가님 수업에서 삶의 큰 위안을 얻는다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아무래도 좀 더 마음이 쓰이는 분들도 있기 마련이었지요. 아이들 키우면서 엄마 작가로 성장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볼 때면, 그분들의 모습이 저의 과거이자 현재, 또 미래 같아서 지나칠 수 없었어요.
시간 될 때마다 글을 봐주기도 하고, 출간 방향을 논의해 주기도 하고 그랬지요. 나중에 우연히 만난 한 작가님이, 그래도 작가로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이력이 있는데 그런 수고를 너무 쉽게 내보이지 말라고 조언해 주시더군요. 일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강퍅하게 사는 건 또 체질에 안 맞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개중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들도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분들이 고마워하고 안 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도울 기회를 주시는 게 고마웠어요. 그 덕에 저도 성장하는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글을 봐주는 건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을 봐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자신도 아직 마음속에서 정리가 안 된 "미해결 과제"를 어설프게 글로 옮긴 경우, 감정을 최대한 숨기며 쓰느라 독자 입장에서 읽히지 않는 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어두운 마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피한 글은 독자 이전에 자신도 설득하기 힘들어요.
자신도 설득이 안 되는, 그런 글을 가지고 오실 때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져오세요. 이런 글일수록 제 입장에서는 조심스레 봐드리는데, 일이 많다 보니 끝내 무슨 실수를 한 걸까요? 무언가를 오해하신 분이 계셨어요. 바로 표정이 변한 채 발길을 돌리셨는데, 그 뒤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인생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글을 봐드린 분이니 제 입장에서 가깝다면 가까운 분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새삼스레 제가 그분을 수소문하고 찾아서 해명이든, 변명이든 말을 건넨다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약간은 씁쓸한 기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 뒤에도 작가로서 감사하고 마음이 충만해진 나날이 많았던 한편으로, "나를 가볍게 소모하는 건가", 의구심이 드는 쓸쓸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교수님만큼 대단한 위치에 선 적도 없는데 교수님 말씀이 이해가 됐습니다. 마음대로 성인군자 대우를 해주다가, 알고 보니 속인이라고 욕했다가, 누군가 나를 편하게 재단하는 느낌이 들어서 대중 앞에 서는 게 무섭게 느껴진다면, 아직 알려진 작가가 아니니 지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어쨌든 나는 일회성 인연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가 스치는 만남으로 여기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게 프리랜서의 비애겠지요. 소속이 없어서 자유롭지만 그만큼 결속력이 있는 관계도 많지 않아요. 그렇게 결론지으면 될 것을, 기어코 쓸데없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내가 더 명성이 있는 작가라면 이 인연을 더 붙잡고 싶어 했을까? 적어도 쉽게 끝내지는 않았을까? 소심한 마음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느새 조그매집니다. 재활용품 바구니의 빈 캔처럼 찌그러지는 느낌입니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글을 쓰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얼마 전 세 번째 책을 냈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응원해 주는 독자가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생각하던, 오래전 나를 떠올려 봅니다. 지나친 칭찬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부럽게 바라보던 그 시절 내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이 글을 시작할 때는 "누군가 필요할 때만 작가님이 되는 것"을 두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 필요할 때라도 작가님이 되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참 이상합니다. 쓰다 보면 씁쓸한 여운 같은 건 점점 작아져요. 서늘한 기억으로 남은 인연도 그렇습니다. 그 또한 내 삶의 서사를 한층 더 두텁게 만들었으니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거지요. 모니터 화면의 글자더미가 찌그러진 마음을 부스럭부스럭 펴주나 봅니다. 눈이 환해져 안 보이던 것이 보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