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시안까지 나오고 이제 정말 출간이 코앞인 게 느껴집니다. 처음 책을 냈을 때는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 많이 말하고 다녔는데 두번째 책은 조심스럽습니다. 책을 내고 인간관계가 정리됐다는 다른 작가 분의 말씀이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제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더군요. 심지어 어떤 작가분이 '아는 사람이 남몰래 내 책에 대해 악플을 달아놓은 걸 훗날 알게 됐다'고 했을 때도 과연 그럴까 싶었어요.제 주변에는 악플을 단 사람은 없었지만 10명 중 7-8명 정도만 축하해 주더라고요. 의외였어요. 2명 정도에겐 상처를 입었는데 그 2명이 가장 신뢰하고 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했어요. 책이 나왔다고 말했는데 '네~'하고 그 이상의 말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책 냈다면서요? 대체 무슨 책을 냈는데요?"라고 빚쟁이 추궁하듯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책은 아니지만 브런치에 '딸아이의 페미니즘'이란 글을 올렸을 때는 "00엄마가 딸밖에 없어서 이런 글을 쓰는 거야. 아들들이 더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라는 약간의 인신공격적인 소지가 있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낸 벗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책의 완성도를 따지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상처였어요.
첫 책 <엄마가 필요해>에는 내 상처가 많이 드러나 있어요. 책 속 나는 참 아파 보여요.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가 여과없이 드러났으니까요. 그래서 막상 책이 나오니 너무 무섭고 떨려서 뒤늦게 출판사에 이거 내고 싶지 않다고 징징거린 적도 있었다죠. 어둡고 슬픈 내가 드러난 글을 아는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느낄지 걱정도 됐지만 은근히 이해와 위로도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문장은 뛰어난데 책의 완성도를 위해 네가 좀더 치열하게 노력했어야지'라고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묻고 싶더군요.
"넌 책 속에 아픈 내가 안 보이니? 완성도 운운하기 이전에 아, 은수 네가 이런 상처가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물론 응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동네 도서관마다 제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해 주시는 건너건너 멀리 아는 분도 있었고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분인데 책이 너무 좋았다며 열 권을 사들고 어느날 갑자기 오셔서 사인을 받아가신 분도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는 책이라면서요. 댓글과 리뷰를 통해 격려와 지지를 해준 이들은 아예 모르는 어딘가에 계신 독자 분들이거나, 이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어요. 오래 알고 지낸,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 중에는 열렬한 성원을 보낸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네요.
이해도 됩니다. 어제까지 분명히 애들 유치원 버스 태워보내고 같이 수다 떨던 아줌마였는데 갑자기 작가라고 나타나는 게 어색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 있어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내가 책 속에 드러나니 약간의 배신감도 느꼈을지 모르지요. 또 딸만 있다는 개인 정보를 아니까 오히려 제 글을 두고 공격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겠고요.
그리고 나한테 가장 상처를 준 그 벗은 책을 무척 내고 싶어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자기가 이루지 못한 성취를 상대가 먼저 해냈을 때 축하해 주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영화 <세 얼간이>에서도 나왔다면서요? 친구가 슬프면 눈물이 나고 잘 되면 피눈물이 난다고요.
처음엔 참 상처도 많이 받았고 씁쓸했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나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제 내 글 자체를 글로서 봐줄 독자들과 만나고 싶어서, 진심으로 작가와 소통할 마음이 있는 누군가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애매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겐 출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출간은 떨리네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책을 내는 건 속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기분이 드는 걸 참고 견디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