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알고 지낸 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듣게 되었다. 신문에도 작게 나왔는데 모르고 지나갔다. 생활고를 겪었던 것 같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인지도도 꽤 높았고 실력도 인정받았는데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대우에 많이 좌절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의 딸이었지만 부모는 물론 주변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아보고자 애썼다고 한다.
어렴풋이 떠올랐다. 단정히 하나로 묶고 다니던 머리와 남색 카디건. 단단해 보이던 입가. 신문기사 속 모르는 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오며 가며 나눈 몇 번의 눈인사가 다였건만 그녀의 자살 소식을 자꾸만 곱씹고 있었다. 기억나는 몇 가지의 단서로 인터넷 속에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을 찾았지만 딱히 뭐가 없어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가 오래전에 한 매체에 쓴 칼럼을 보았다. 이제 막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립해 ‘하고 싶은 일로 밥 벌어먹고 살리라’며, 당차게 출발한 시점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내 한 몸은 건사할 거란 그녀의 예상과 달리 갑자기 끊긴 일거리로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협받았다. 월세가 밀리기 시작하고, 하루 식비가 400원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이 대목에서 한예종을 졸업하고도 생활고로 숨진 한 시나리오 작가가 떠올랐다.)
굶어 죽을 수는 없어 본업과는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정작 아르바이트 때문에 본업에서 멀어지는 일상도 굶주림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생업을 위한 예술과 자기표현을 위한 예술이 일치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운아인지. 거의 20년간 혹독한 현실을 다부지게 버티던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침해할지 모르는 최악의 빈곤이 오기 전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처음이었다. 가난이 무섭게 느껴진 게. 이렇게 쓰면 꽤 유복하게 살아온 사람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집도 아버지의 공무원 월급으로 살림은 늘 빠듯했고 친정 엄마는 평생 돈 걱정을 하느라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노라 말씀하신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 먹을 끼니가 없다거나, 좁긴 해도 발 뻗고 잘 집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가난은 주로 상대적인 박탈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느낀 빈곤감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진짜 민낯을 드러내는 ‘빈곤’이 생존을 향한 갈망과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면 ‘빈곤감’은 무력감과 우울감을 가져온다. 당장 굶어 죽는다는 공포는 아니지만,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주변의 무시와 눈총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래서 한때 가난보다 더 해로운 게 상대적인 빈곤감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굶어 죽을 위험 앞에서는 차라리 더 강해질 텐데, 늘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렀기에 세상 물정 몰라도 되는 부자도 아니면서 생활력 강한 사람도 못 되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에 작은 방 한 칸 마련하고 살고자 몸부림쳤던, 그러다 사라져 간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이만큼 살았어도 나는 여전히 세상의 한 귀퉁이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덮친 가난의 정체. 당장 먹을 쌀이, 마실 물이 없을지도 모르는 내일. 자기 분야에서 아무리 실력을 갈고닦아도 그 현실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 덮쳐온 절망감. 그러면서도 유서를 통해 지인들에게 ‘끝까지 꿋꿋하게 살길’ 당부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미 한참 지난 일인데 이제야 애도하며 이렇게 글까지 남기는 건 어쨌거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오래전 하루 400원으로 버티던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입바른 소리는 많이 했지만 그저 말뿐, 젊은 예술가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바꾸는 데 작음 보탬이라도 된 일을 한 게 뭐가 있을까, 반성한다.
또 하나는 이제야 가난을 무섭게 느낀다는 고백을 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대학까지 나오고 이 정도 경력을 쌓았는데 굶어 죽기야 하겠냐고 우스갯소리처럼 건넸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을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 전부를 걸고 자신이 원하는 예술적 성취를 끝끝내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가난 따위 우습다는 식으로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아니,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 품지 않았던가. 죽기 직전까지 마지막 마감을 챙겼던 그녀를 추모하며 되뇌어본다. 가난은 무섭다고, 그렇게 무섭기에 그녀의 당부대로 더 꿋꿋해져야겠다고.